정말로 산 사람을 순장했을까. 순장은 자발적이었을까, 강제적이었을까. 마땅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살펴보려면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순장의 흔적은 주로 4, 5세기 신라 가야 고분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왕 혹은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경주의 신라 황남대총 남분에선 순장됐던 10대 소녀의 인골이 출토됐다. 고고학자들은 이 소녀가 시녀나 첩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가야의 왕족들이 묻혔던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도 순장 인골이 발견됐다. 이 중 44호분의 경우, 중앙에 큰 석실(石室·돌방) 3개를 마련하고 그 주변을 32개의 작은 석곽(石槨·돌덧널무덤)으로 둘렀다. 가장 큰 석실에 주인공이 묻혔다. 주인공이 묻힌 석실 한쪽과 나머지 두 개의 석실, 32개의 석곽묘에서 모두 한 명씩 순장당한 인골이 발견됐다. 순장 당한 사람 중엔 긴 칼이나 화살촉과 같은 무기, 금은제 장신구 등을 착용한 사람들이 있어 생전에 신분이 비교적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 영덕 지방의 신라 무덤에서 금동제 귀고리를 착용한 채 순장된 사람이 발견됐다. 이 역시 신분이 높았을 것이다. 따라서 신분이 높은 사람도 순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산 사람을 순장했는지, 순장이 자발적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신분이 낮은 시녀 등은 강제로 죽였을 가능성이 높고 비교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볼 따름이다.
순장은 6세기 들어 금지됐다. 삼국사기는 ‘지증왕은 502년(지증왕 3년) 봄 3월에 명령을 내려 순장을 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6세기 신라고분에서 사람 대신 흙인형(토용·土俑)이 발견된 사실이 이 기록을 뒷받해준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