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키워요]맞벌이 주부 3인의 '탁아 전쟁'

  • 입력 2002년 9월 3일 16시 06분


《아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는 모든 맞벌이 부부의 고민. 아직까지 엄마의 몫으로 돼 있는 육아. 그래서 탁아문제는 맞벌이 주부에게 심각하다. 맞벌이 주부 3명이 벌이고 있는 ‘탁아와의 전쟁’을 소개한다.》

■ 이은주(31·두산오토 머천다이징팀) + 딸 최희선(26개월)

◎숨가쁜 24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식탁에 남편과 딸이 먹을 음식을 차려 놓는다. 틈틈이 어린이집에 보낼 연락장에 메모한다. ‘희선이가 어제 저녁 놀이터에서 넘어졌어요’ ‘자기 전 심하게 놀았어요’ 등.

남편과 아이를 깨우고 집에서 나온다. 남산에 있는 회사까지 출근시간은 15∼20분. (남편은 딸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 뒤 출근길에 아파트 건너편 10분 거리에 있는 ‘반포 구립 사랑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다.)

아주머니(보모)가 잠원동 집으로 출근하면서 희선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올 시간. 전화하고 싶지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칼 퇴근’하는 날이 많지 않다. 오후 8시 혹은 9시까지 회사에 있을 때가 많다.

아주머니 퇴근. (남편이 아주머니에 이어 아이를 돌볼 때도 많다. 남편마저 약속 때문에 여의치 않으면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한다.)

남편과 함께 희선이를 목욕시키고 책을 읽어준다. 남편이 희선이와 함께 놀이터까지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희선이가 잠들면 주변을 정리하고 책을 읽다가 밤 12시경 잠든다.

◎나의 탁아일기

출산휴가가 끝난 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번갈아 희선이를 맡아 돌봤다.

주말에 데리고 와서 일요일 저녁에 데려다 주었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것은 올 3월. 저녁엔 직업소개소를 통해 구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돌보다가 8월부터 친척의 소개로 알게 된 지금의 아주머니(50대 후반)가 맡는다.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에 월 60만원을 주고 있다. 어린이집 보육료는 월 20만6000원.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희선이를 낳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았다.

△해외출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희선이를 매일 챙겨줘야 하는데 출장을 가면 그러지 못하기 때문.

△2주에 한번 토요일에 소아과를 찾아가 소아제나 감기약 등 비상약을 받아둔다. 어머니가 맡아 키울 때는 몰랐는데 직접 맡아 키우니 주중에 아이가 아프면 더 힘들다.

■ 김은정(28·한솔교육 FC지원팀) + 딸 김서현(28개월)

◎숨가쁜 24시

마포구 신수동. 사내커플인 남편(31), 서현이와 함께 10분 거리인 마포구 대흥동 친정으로 향한다. 남편은 아파트 1층에서 기다리고 서현이와 함께 16층 친정집으로 올라가 친정어머니(50)에게 서현이를 맡긴다.

다리를 잡고 가지 말라고 하는 서현이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1층에 있는 남편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실랑이가 20분 이상 계속되면 휴대전화로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한다.

마포구 공덕동 회사까지는 버스로 20여분. 요즘엔 실랑이가 길어져 택시를 타고 출근할 때가 많다. 서현이는 친정집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는다.

퇴근. 친정까지 걸어서 30분. 아이는 뛰어나오면서 “엄마”하고 외친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면 친정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온다.

저녁 준비하고 청소하고 빨래. 서현이와 노래부르고 놀아준다.

서현이는 졸린 듯 침대로 가자고 하며 손을 잡아 끈다.

◎나의 탁아일기

출산휴가 뒤 육아휴직을 해 11개월간 직접 서현이를 돌봤다. 한솔교육에서 총 출산근로자 131명 중 82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지금은 고용보험에서 월 20만원을 받지만 당시엔 이 제도가 없었다.

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게 좋다고 친정어머니가 권했고 회사측에서도 배려해 육아휴직을 얻을 수 있었다.

육아휴직 기간에 친정어머니, 아이와 함께 차를 몰고 여행을 많이 했다.

친정어머니에게 맡긴 뒤 매달 고정적으로 60만원씩 드린다. 필요한 것을 사 드리고 아이 돌보기를 거들어주는 아파트 아주머니들에게 가끔 식사도 대접하지만 어머니의 돈도 들어간다.

△친정어머니가 딸의 직장생활을 지지하면서 외손녀를 돌봐주고 있지만 아이가 보챌 때는 집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론은 집에 있다고 서현이를 더 잘 보는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중요하다는 것.

△쉬는 날 아이를 보려고 하면 하루종일 웃는 낯으로만 있을 수는 없다. 남편이 곧잘 아이를 맡아줘 외출에 어려움이 없다.

■ 박미진(33·앙스모드 매장관리팀)+딸 고예원(34개월)

◎숨가쁜 24시

강남구 논현동. 아침을 준비하면서 예원이의 저녁 도시락을 싼다. 남편은 책을 보거나 빨래를 갠다. 아침을 먹은 뒤 자는 아이의 옷을 입힌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20분 거리인 회사로 출근. 예원이가 한 살 때는 기저귀를 매달고 챙길 것도 많아 힘들었다. 매장 옆 건물 3층 직장보육시설(어린이집)에 맡긴다.

예원이가 있는 어린이집 쪽으로 갈 때도 있지만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들여다본다.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집에 가는 줄 알고 달려나온다. 떼를 쓰며 울기도 해 보고 싶어도 참을 때가 많다.

(예원이가 어린이집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는다.)

퇴근.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온다.

저녁을 먹으면서 예원이에게도 과일을 준다. 집안정리하고 빨래하면서 틈틈이 놀아준다.

남편이 퇴근해 예원이와 놀아준다.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예원이가 잠들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나의 탁아일기

임신하자마자 입덧이 심해 아예 회사를 그만두었다. 출산 후 1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예원이를 시어머니가 주로 돌봤다. 복직하면서 분가해 아이를 직장보육시설에 맡겼다. 직장보육시설이 없었으면 복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9명의 아이를 3명의 교사가 돌본다. 보육료도 월 21만원이어서 큰 부담은 아니지만 오전 8시반부터 저녁 7시반까지 11시간이나 맡겨 마음이 아프다.

△직장보육시설은 근로자가 필요한 시간만큼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아프거나 하면 금방 달려가 볼 수도 있어 좋다.

△현재 직장보육시설이 설치된 곳은 124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이라는 설치기준이 있지만 강제규정이 아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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