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년전(1653년) 제주도. 난파선 스페르베르호(네덜란드 동인도회사소속 상선)의 항해서기 하멜은 동료 35명과 함께 여기 발을 디딘다. 이 단순한 표류사건. 이것이 조선을 당시 세계의 중심인 유럽땅에서 최대의 관심국가로 띄워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2년의 히딩크감독처럼. 그것은 15년후 네덜란드에서 발간된 그의 항해일지 덕분이다. 당시 이 책은 영어 독어 불어 네덜란드어로 발간돼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팔리며 조선을 세계의 중심에 올려주었다.
일본 나가사키(규슈)의 화란 상관(商館)을 찾아가다가 표류한 하멜일행. 그들은 자신들이 상륙한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았다. 억류된 이들을 조사하기 위해 도성에서 통역이 내려왔다. 놀랍게도 그 역시 화란인. 26년 앞서 조선땅을 밟은 벨테프레였다. 보고에 접한 효종은 일행을 도성에 들인다. 이렇게 해서 이뤄진 하멜의 조선여행길. 반도에서 여행의 시작은 땅끝 해남(전라우수영)에서 이뤄졌다.
영암 나주 장성을 거쳐 입암산성 정읍 태인 전주 여산을 경유, 공주를 지나 남대문으로 이어진 14일간의 여정. 효종의 궁중연회에 초청된 이들은 임금행차때 어가를 호위하는 친위대격인 호련대의 외인부대에서 2년간 편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전라병영(전남 강진군 병영면)에 유배되고 예서 7년을 지낸다.
병영은 강진과 영암의 중간. 일행은 각자 집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일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효종이 하사한 쌀로 연명하며 관아에서 노역도 했다. 흉년들면 걸식으로 연명하고 배로 섬을 오가며 장사도 했다. 청어를 소금에 절여 먹는 네덜란드식 청어절임도 알려주었다.
그런 역사가 깃든 병영. 영암 강진에서 835번 지방도로 갈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하멜의 유산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특이한 돌담이다. 일정한 패턴으로 황토흙을 비벼 넣고 쌓은 돌담. ‘하멜식 담쌓기’라 불리는 이 돌담은 동네 곳곳에 있었다. 하멜일행이 모여 살았다는 은행나무 정자 옆 개천가에도 있다. 보수공사가 한창인 병영성이 제 모습을 찾고 나면 이 돌담에 대한 고증도 이뤄지리라.
지척의 영암은 하멜일행이 상경길에 동료 한 명의 주검을 묻고 간 곳. 병영에서는 3년가뭄 끝에 일행중 11명이 숨졌다. 전라병영은 남은 22명을 순천 여수 해남에 분산수용했다(1663년). 하멜의 조선탈출은 이때 준비된다. 이듬해 어선을 구하고 억류 13년만인 1666년 8명은 여수에서 썰물을 타고 탈출한다. 336년전 어제 9월 4일의 일이다. 조선 억류 13년만, 세 번째 탈출시도였다. 그리고 이틀후 일본 히라도섬에 도착한다. 묘한 인연이다. 히딩크감독이 다시 한국을 찾은 날이 하멜이 조선을 세계에 알려준 ‘하멜표류기’의 탄생일인 것은.
▽여행정보〓하멜이 지났던 해남 강진 영암은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기 좋은 코스. △해남〓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 땅끝전망대가 있고 보길도로 하루코스로 돌아볼 수 있다.(8월 29일자 C8면 You&Me 참조) △강진〓청자마을, 만덕산 백련사와 다산초당등이 있다. △영암〓산세 멋진 월출산에 도갑사가 있다.
강진〓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이색숙소 : 월출산 온천관광호텔
나주 목포 무안 해남 강진 장흥 완도 진도. 남도땅 여행길에 반드시 한 번은 지나게 되는 영암. 지도상으로 보아 딱 한가운데인 탓이다. 영산강 하구둑 덕분에 생긴 너른 들판. 영암의 상징 월출산은 그 들판의 남쪽, 강진쪽에 불쑥 솟아 있다.
강진의 하멜식 돌담이 그러하듯 월출산 또한 특별하다. 반도의 허다한 산악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진기한 모습 덕분. 도대체 나무가 자랄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바위로 이뤄진 악산(嶽山). 이리 삐죽 저리 뾰족 두서없이 하늘을 찌르는 산봉으로 산의 풍모는 웅장 담대 거창 유려하다. 그 변화무쌍한 마루금으로 드러나는 산의 자태는 우아하면서도 도전적이다. 그러다 하얗게 눈에 덮이는 날은.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들판 건너 월출산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영암읍 외곽. 월출산 온천관광호텔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객실에 앉아서도 산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좋은 숙소(Room with a view)다. 거기에 온천까지 있으니 주말예약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온천수는 월출산 암반대의 주요 암석인 홍색장석 화강암(일명 맥반석)에서 솟는다.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 신체기능을 이완 안정시키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온천호텔에 대한 평가는 수질 보다는 온천탕의 청결도와 시설에 좌우되기 마련. 그런 면에서 월출산 온천관광호텔은 합격점에 들만하다. 일본의 온천호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온천탕(1500명 수용규모)의 실내를 보자. 2층 높이의 천정과 자연채광으로 쾌적함이 돗보인다. 수중안마탕 유수기류탕 소나무욕조탕,핀란드사우나(건식) 쑥찜사우나(습식) 안개사우나등 탕내시설도 다양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노천탕. 쾌청한 가을에는 푸른 하늘 바라보며, 비나 눈 내리는 날은 그 나름대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남도여행길에 꼭 한 번 들러 볼만한 깔끔하고 편안한 쉼터다.
▽숙박정보〓전남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홈페이지(www.wolchulspa.co.kr) 참조. 061-473-6311 △찾아가기〓¤호남고속도로/광산IC∼13번국도∼나주∼영암읍 ¤서해안고속도로∼목포TG∼2번국도∼강진∼독천(월출산 도갑사방향)∼819번 지방도∼영암읍. 영암읍에서는 821번 지방도(시종 도포방향)를 이용. △온천탕〓요금 6000원(어린이 4000원), 오전 6시∼오후 8시. 평일은 1000원(500원) 할인. △숙박료〓스탠더드룸(한·양실) 9만6800원(봉사료 부가세 포함). 전객실에 24시간 온천수 공급.
영암〓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 : 남도 한정식
오후 6시. 설성식당 주방아줌마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그런 분주함은 손님에게 몽땅 노출된다. 홀 자체가 주방인지라 손님들에게 다 보이기 때문. 주인 길복순씨(61) 말. “개방형 주방이지요.” 그 말의 속뜻, 다름아닌 ‘깔끔함에 대한 자신감’이다.
맛에 대한 프라이드는 더 하다. “음식맛은 정성이야.”라는데. 김치는 그 날 담근 것만 낸다. 하루에 한 번, 매일 담근다. 반찬 역시 마찬가지. 그 날 장만한 것만 낸다. 다음 날로 물리는 반찬은 절대 없단다. “남으면 주방식구들이 다 갖다가 먹어요. 남지도 않지만….”
소꼽친구 두 여주인이 20여년째 운영하는 한정식 식당. 상차림을 보니 남도는 남도다. 접시가 포개질 만큼 반찬이 많다. 상 한 가운데는 연탄불에 구운 고추장양념의 돼지오겹살 주물럭. 매콤 달콤 짭잘 고소, 술안주로 ‘왔다’다. 고춧가루 푸지게 넣고 멸치젓 새우젓에 버무린 김치. 감칠맛이 별미다.
맛 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가격. 한 상(4인분)에 2만원, 1인당 5000원꼴이다. 8년전 가격이다. “하도 서있다 보니 관절염도 오고 자식들도 다 컸으니 1, 2년만 더 하고 그만둘랍니다.” 길씨의 말. 문닫기 전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식당정보〓병영면 읍내 남삼인리 길가(LG주유소 건너편). 점심과 저녁(주문은 8시까지)만 낸다. 주문을 상(4인분·2만원)단위로 받는 것이 특이하다. 1인 추가시 5000원. 월요일은 쉬는 경우가 많으니 사전에 전화로 확인한다. 061-433-1282 ¤강진읍∼2번국도(장흥방향)∼835번지방도(영암방향)¤영암읍∼13번국도(강진방향)∼835번(장흥방향)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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