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는 지난달 21일 페리 선상에서 투신했으며 이를 목격한 승객이 해경에 신고해 인근 해역을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친지들은 전했다. 선상에 남겨진 그의 가방 안에서는 짧은 유서와 함께 중절모를 쓴 신사가 가슴까지 바다에 잠겨 있는 합성 사진이 발견됐다.
강씨는 또 여행 직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서신을 받을 즈음이면 나는 서울을 떠나 남해를 찾아 다시 한번 떠났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마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갔을 것입니다. 아, 이 땅의 자네들이 그립겠지요. 아직 누릴 수 있는 젊음을 만끽하며 이 세상을 누려보시게. 나 먼저 가네. 친구들이여, 잘 있게”라고 썼다.
독신인 강씨는 2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아왔다. 그는 경기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재학 중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컬럼비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30여년간 살면서 강의와 소극장 운동 등을 펼치다 87년 귀국한 그는 한성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시집 ‘사랑무한’과 철학논문집 등 20여권의 저서를 남겼고 ‘어쩐지 돌연변이’ 등 희곡을 쓰기도 했다.
강씨의 희곡 ‘뻔데기전’을 무대에 올렸던 윤호진씨(극단 에이콤 대표)는 “강씨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빛을 보지 못한 불운한 천재였다”고 말했다.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