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던 날 산중도 불어나는 계곡 물소리에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번 비로 축대와 담장이 무너지고 노송(老松)들이 줄줄이 넘어지고 나무가지가 부러졌다. 무엇보다 온 종일 집중호우가 있었기 때문에 계곡 가까이 있는 암자가 피해가 많다. 어떤 비에도 끄떡없던 삼선암 다리가 물살에 쓸려 떠내려갔으며 길상암 앞 교량도 그 흔적이 없다.
해인사에서 35년을 살았다는 노스님도 이번 같은 태풍은 처음 보았단다. 거대한 자연의 재앙 앞에서는 손을 쓸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 같다. 아무리 기상을 예측하는 기술이 발달해도 천재지변까지 피해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제는 인간 중심의 개발과 환경파괴가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는 환경단체의 경고를 귀담아 들을 때라고 생각한다. 현대인간의 기술은 강줄기도 막을 수 있고 갯벌도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의 땅으로 바꿀 수 있으며, 또한 과학의 발달은 생명의 질서까지 바꿔버릴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과학과 기술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태풍을 겪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숲의 고마움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이 온 몸으로 막아주었으며 산사태의 위험도 수목의 단단한 뿌리 때문에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숲이 없었다면 거센 비바람을 고스란히 사람의 힘으로 막았을지 모른다. 강풍과 폭우에도 해인사가 온전했던 것은 바로 주위의 울창한 숲이 완충 역할을 하고 울타리가 됐기 때문이다. 숲은 이처럼 인간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하지 않으면 아낌없 희생한다.
전국의 수많은 수해 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 앞에 거만하고 오만했던 인간에 대한 엄중한 경고 같아서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낡은 구호 같지만 지금이 바로 환경과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때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웃들이 많다.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일은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인연 공동체로서의 한 몫이다. 우리 이웃의 많은 수재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성원의 마음을 보내며 하루 빨리 수마의 상처를 딛고 일어났으면 한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