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제해 ‘표현과 집회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동창회나 향우회 종친회 등의 자연발생적인 모임을 부정선거를 막는다는 이유로 일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명백한 과잉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선거운동의 과열을 막기 위해 규제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전면 금지는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다른 헌법학자들도 동창회 등을 포괄적으로 막게 되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과 집회의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려대 법대 김일수(金日秀) 교수는 “동창회 등에 대한 전면 금지는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며 “입법 및 집행 기관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 수십∼수백명 단위로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이같은 사적(私的) 모임을 관계당국에서 일일이 단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내는 의견도 많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그런 모임에서 금품이나 향응을 베풀며 지지를 부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구체적인 단속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 사이트에는 단속 방침이 발표된 6일부터 8일까지 200여명의 네티즌들이 항의 의견을 올리며 거세게 반발했다.
네티즌 김덕성씨는 “선관위가 동창회 등이 선거운동에 악용되는 것을 막는 방안을 내놓아야지 자연스러운 모임을 마구잡이로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대한민국’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선관위의 방침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하위 법률로 제한하겠다는 발상으로 전두환 정부 때도 없었던 행정편의주의”라고 주장했다.
이에 선관위 김호열(金弧烈) 선거관리실장은 “송년 모임이 ‘변질’될 가능성을 미리 봉쇄하자는 취지였다”며 “유권자들의 이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선관위 “국회 관련조항 개정땐 반대안해”▼
선거운동 기간 중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을 금지한 선거법 규정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8일 관련 조항 개정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에 선관위가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전반에 대해 개정 의견을 냈으므로 국회가 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법 개정을 논의할 때 유권자의 반발이 거센 이 조항을 수정하는 문제도 검토하지 않겠느냐”며 이같이 밝혔다.
현행 조항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가 낸 의견을 국회 정개특위가 받아들여 2000년 2월 16일 여야 합의로 법제화한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당시에는 우리 선거풍토에서 지역감정과 지연 학연 등 연고주의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 이 같은 의견이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대통령선거 일정이 선의의 각종 모임이 폭주하는 연말과 겹친다는 점에서 지나친 기본권 규제라는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며 “법을 집행해야 할 우리로서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동창생 몇명 송년회 해당안돼 제사위한 종친모임도 괜찮아”▼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 기간 중 동창회와 향우회 종친회 등을 열 수 없도록 규정한 선거법 103조의 규정에 대해 유권자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곤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선기간이 각종 모임이 집중적으로 열리는 연말과 겹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효과적으로 단속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선관위는 조만간 국회가 문제의 조항에 대한 수정을 검토할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법 집행기관으로서 단속에 나서게 될 경우의 법 적용 원칙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올해 11월27일부터 12월19일 사이에 날짜와 장소, 대상 등을 미리 정해놓고 통보한 뒤 조직적으로 모이는 공식적 성격의 모임은 모두 단속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고향친구나 동창생 몇 명이 즉흥적으로 모여 송년회를 하거나 모임을 갖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공식 성격의 모임일 경우에는 모임의 회칙이나 규약, 모임 명칭 등이 없더라도 단속대상이다. 모임의 규모에 대해서는 명문화된 기준이 없다. 상식적으로 2, 3명이 모인 것을 단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14∼20여명이 모였을 때는 공식 동창회라는 이유로 적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해마다 같은 날짜에 지내는 제사를 위해 종친들이 모이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문제는 연말에 열리는 각종 모임에 대해 선관위가 정말 법 규정을 내세워 일일이 단속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법 집행기관으로서 관련 조항이 개정되지 않는 한 단속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선관위는 특히 호텔과 같은 대형장소에서 하는 모임을 일차적으로 단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 신고가 들어온 경우는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