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서 웅대한 교향곡 10곡과 수많은 가곡을 발표한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요즘 교향악단과 음악팬층에 부는 ‘말러 바람’이 범상치 않다.
지휘자 임헌정의 건강문제로 1년간 순연됐던 부천 필의 ‘말러 시리즈’가 6월 18일 5번교향곡을 시작으로 재개되자, 지휘자 곽승 체제의 서울시 교향악단도 10월부터 말러 교향곡 5번 1번을 야심적으로 연주한다는 계획을 널리 홍보하며 ‘맞불작전’에 나섰다. 올 4월 열린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에서도 11개 악단 중 이례적으로 코리안심포니 울산시향 등 2개 악단이 말러의 교향곡을 ‘겹치기’로 선보였다.
이런 인기 급상승에는 말러 애호층의 확대가 그 뒷받침되고 있다. 최근 한 음악전문지가 실시한 음악계 인사 및 칼럼니스트 대상의 ‘명교향곡’ 설문조사에서 말러의 교향곡 5번은 드보르자크 ‘신세계에서’, 베토벤 ‘전원’ 등을 제치고 4위에 올라 놀라움을 안겨줬다.
부천필 말러 시리즈의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해 3월 출범한 말러팬들의 모임 ‘말러리아’는 전세계의 말러관련 음반과 문헌을 통째로 모아들이는 말러광(狂) 20여명의 격론장이다. 지난 번 교향곡 6번 연주를 앞두고 ‘4악장에서 해머를 몇 번 칠 것인가’로 고민하던 부천필 상임지휘자 임헌정은 ‘말러리아’에 결론을 내달라고 의뢰했을 정도. 회원들은 문헌을 연구한 끝에 ‘세 번이 아닌 두 번으로 기록된 악보가 말러의 최종 결심을 담고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말러리아’가 아니더라도 말러의 인기는 소집단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말러 교향곡 연주가 열리는 공연장에는 청바지 차림으로 둥글게 모여 작품과 연주에 대한 토론을 펼치는 젊은 청중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학 음악감상 동아리나 인터넷 소그룹을 통해 만난 ‘탐구심’이 강한 청중들이다. 예술의 전당 고희경 공연기획팀장은 “말러 연주가 있으면 발매 초반에 대부분의 티켓이 판매된다. 청중들이 이 공연 저 공연을 놓고 저울질하지 않는 ‘충성도가 높은’ 팬들이라는 점을 증명한다”고 분석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말러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말러는 자신이 살았던 ‘세기말’을 음악 분야에서 가장 잘 구현한 작곡가다. 내면의 인간본능을 파헤친 심리학자 프로이트, 열망과 탄식을 핏빛 화면에 뿌린 화가 뭉크, 자신을 항상 수형자(受刑者)로 여겼던 작가 카프카 등이 말러와 같은 시대의식을 표현한 인물들이다. 말러에의 심취는 이들이 앞장서 느낀 현대에의 불안이 반영돼 있다.
구미에서는 말러 탄생 100주년(1960년)과 말러 서거 50주년(1961년) 이후 대대적인 말러붐이 불었다. 마침 도시화와 가족의 해체가 분명해지던 시점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인간관계에 지친 ‘고립된 개인’이 말러의 표현주의적 세계에 쉽게 공감한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말러리아’ 리더 최은규씨 (부천필 제1바이올린 부수석)는 “말러의 음악 속에 나타나는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등의 공존과 충돌은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계의 모습을 직시하도록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이런 점에 현대인이 깊은 공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말러교향곡 추천음반 4곡▼
★교향곡 1번/에도 데 바르트 지휘/미네소타 오케스트라/버진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접근하기 쉬워 ‘입문용’으로 적당하다고 알려진 작품. 28세때(1888) 발표된 곡으로 각 악장이 청춘의 희망과 좌절, 환희를 나타내고 있다. 데 바르트가 지어내는 각 악장의 표정이 매우 따뜻하며 세부의 미묘한 정감을 잘 살려준다.
★교향곡 5번/지우제페 시노폴리 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DG
장송행진곡풍의 1악장, 아내 알마에게 보내는 연가인 4악장 ‘아다지에토’, 드높은 성취와 승리의 분위기가 표현된 5악장 등이 완숙한 솜씨로 짜여 있다. 지휘자의 리드에 잘 반응하면서 깊이있는 표정을 지어내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장점이 잘 표현된 음반.
★교향곡 6번/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비극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말러의 교향곡 중 난해하기로 소문난 작품이지만 염세적인 말러의 내면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적막감이 짙게 드러나는 3악장에서 카라얀이 엮어내는 악기간 밸런스와 빠르기의 설계는 세련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
★교향곡 7번/피에르 불레즈 지휘/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DG
제목은 ‘밤의 노래’. 다섯 악장에 걸쳐 여름밤의 신비로움을 표현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마지막 5악장은 ‘한밤에 꿈꾸는 백주몽(白晝夢)’으로서 멋진 끝맺음을 보여준다. 불레즈는 템포를 다소 빠르게 잡고 큰 기복을 살려 역동적인 밤의 세계를 펼친다.
밀러 교향곡 하반기 주요 공연일정 | ||
공연일자 | 연주악단 | 연주곡목 |
10월5일 | 서울시교향악단 (지휘 곽승) | 교향곡 5번/베토벤 로망스 1,2번(협연 이성주) |
11월14일 | 〃 | 교향곡 1번 ‘거인’/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 정진우) |
11월29일 |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임헌정) | 교향곡 7번 ‘밤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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