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바둑에서 제기될 수 있는 철학적 문제를 다룬 책이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박우석(49) 교수가 최근 펴낸 ‘바둑철학’(동연)은 바둑이 철학적 연구의 대상일 뿐 만 아니라 철학이 바둑을 통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 책은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이자 프로기사인 문용직 4단이 1998년 발간한 ‘바둑의 발견’(1998)에 이어 바둑을 학문적으로 접근한 보기 드문 저작이다.
바둑과 철학을 연결시키는 것은 낯설게 느껴진다. 바둑의 무엇이 철학적일 수 있다는 것일까. 하지만 책을 펴들면 바둑에도 무궁무진한 철학적 연구과제들이 늘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교수는 이 책에서 그동안 수학 심리학 인공지능 인지과학 분야에서 바둑과 관련된 국내외 연구성과를 총망라하면서 과학철학으로서 바둑철학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는 특히 1970년대 이후 각광받기 시작한 ‘통합 인지과학’ 부문에서 바둑학이 정립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컴퓨터 바둑의 경우 다음 수는 어디가 최선인지를 프로그래밍하기 위해선 인식론 존재론 등 철학 분야는 물론 기호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문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전문적인 철학서적에 가깝다. 아마추어 애기가의 철학적 외도로 보기엔 2년간 들인 공력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선 바둑의 ‘감각’에 대해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창시자 찰스 샌더스 퍼스의 ‘가추(Abduction)적 추리’와 ‘사고(思考)실험’ 이론을 도입해 설명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철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가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연역이나 귀납과는 다른 ‘가추’라는 개념을 통해 바둑의 감각을 직관, 발상의 전환 등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박교수는 “이 책이 어떤 결론을 내려고 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무수한 바둑철학 논저들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둑철학의 연구가 심화된다면 이창호 9단의 끝내기 솜씨, 이세돌 3단의 전투력, 유창혁 9단의 공격력 등도 철학적으로 다뤄지고 설명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