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노래가 잘 돼요. 너무 오만해 보이나요?(웃음) 물론 목소리가 예전만큼은 안되지만 전 조금도 지치지 않아요. 늘 감사하는 마음때문인가 봐요.”
그의 전성기는 화려했다. 1969년 서울대 음대 재학 중 독창회를 가졌고 1973∼76년 베를린 국립음대 유학 시절 교향악단 솔리스트로 발탁돼 프랑스 순회 연주를 하는 등 유럽 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79년 32세의 나이에 경희대 교수에 임용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제가 큰 어려움없이 유복하게 살아왔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게도 살아오며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저를 노래하게 만든 이유인 것 같아요.”
그는 어렸을 적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서른 즈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80년초에는 큰 병(병명은 밝히기 꺼려했다)을 앓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혼 이후 내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철저히 외면했고 그래서 몹시 미워했죠. 그런데 2년전인가, 10년만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문득 내 목소리를 준 것도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게 집착이에요. 집착을 버리면 해탈이 오죠.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도 결국은 집착이었던 것 같아요.”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그는 다양한 오페라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가정 생활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워 39세때 오페라를 접었다.
“집안이 너무 엉망이 되니까 남편에게 이혼당하겠더라고요(웃음). 욕심을 안냈기 때문에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간이란 일단 올라가면 내려올 수 없어요. 세계적인 성악가가 됐다면 제가 얼마나 더 오만했을까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해요.”
그는 무대에서 늘 한복을 입고 머리엔 쪽을 진다. “한복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냐”고 묻자 그는 “아니, 우리의 옷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번 독창회에서는 슈베르트 ‘바위 위의 목동’, 브람스 ‘그대의 푸른 눈’ ‘오월밤’ ‘전갈’, 말러 ‘아름다움을 사랑하리라’ ‘나의 노래를 보지마세요’ 등 독일 가곡만 부른다.
“쇼팽은 연주 여행을 다닐 때 조국인 폴란드의 흙을 병에 담아 늘 가지고 다녔다고 하잖아요. 전 한국 사람이고 한복을 입는 것은 당연하지요. 한복을 입고 독일가곡을 부른다…. 얼마나 멋져요.”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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