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커피]에스프레소 커피와 '그의 아이들'

  • 입력 2002년 9월 26일 17시 27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의 스타벅스 광화문점.

30대 중반의 커플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카운터로 성큼 다가서는 여자, 여자의 뒷편에 서서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

"주문하시겠습니까?"

"카페모카, 톨 사이즈로 주세요. 자기는?"(여자) "음…, 그냥 같은걸로…."(남자)

스타벅스의 윤소영 매니저(28)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 커피빈앤티리프 같은 전문점의 진출로 한국에서도 에스프레소 커피가 대중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제품 이름에 익숙치 않은 손님이 많다는 것. 커피점마다 컵의 사이즈를 가리키는 용어도 달라 어느 정도 양인지 가늠하기 힘들 때도 많다. 윤 매니저는 "특히 남자들이 이름에 더 약한 편"이라고 말한다. 이름조차 낯설다보니 대부분은 그 커피 제품에 어떤 첨가물이 들어가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마신다.

에스프레소 전문점에 가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당당하게' 주문해서 마시려면 우선 에스프레소와 다른 커피의 차이점부터 이해해야 한다.

카페모카

● 에스프레소(Espresso)는 ‘빠르게 만드는’ 커피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는 뜻이다. 커피 콩 가루에 물을 여과시켜 커피 음료를 추출해내는 시간이 다른 커피에 비해 짧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에스프레소는 순간적으로 뜨거워진 수증기가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커피 가루를 통과하면서 음료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수증기의 압력이 커피 가루를 압축시키면서 가루를 눌러 짜게 되므로 농도가 짙은 커피가 나오는 것.

에스프레소의 상대적인 개념은 아메리칸 스타일 같은 브루드 커피(Brewed Coffee)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커피 메이커를 보면 알 수 있듯 브루드 커피는 뜨거운 물이 가루를 압축시키지 않은 채 천천히 통과만 하므로 상대적으로 연한 맛의 커피가 만들어진다.

에스프레소의 맛이 진한 것은 커피 콩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커피 열매를 따서 에스프레소용 커피 콩으로 만들 때는 브루드 커피용보다 더 오래 볶는다. 커피빈앤티리프의 이현승 매니저(31)는 “식빵을 오래 구울수록 쓴 맛이 강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했다.

또 에스프레소 커피는 대개 여러가지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커피 콩을 섞는다. 이것을 블렌딩(blending)이라고 부른다. 이런 이유로 에스프레소용 커피 콩의 이름에는 끝에 ‘블렌드(blend)’라는 단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오래 볶았음을 뜻하는 ‘다크 로스트(dark roast)’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에스프레소용 커피 콩이다.

캐러멜 시럽을 얹은 카푸치노

●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 커피 제품들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5㎝ 남짓한 높이의 작은 잔에 커피를 담아 단숨에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작은 잔의 이름은 ‘데미타스(demitasse)’.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가장 기본적인 스타일로 여기에 담기는 커피의 양은 1온스(28g)가량이다. 이 분량의 한 잔을 ‘원 숏(one shot)’이라고 부른다.

이 정통 스타일의 에스프레소는 쓴 맛이 너무 강해 이를 중화시키기 위해 물과 우유 등을 첨가한 ‘카푸치노’ ‘카페라테’ 등이 만들어졌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앤티리프가 사용하는 제품 이름은 기본적인 부분은 같다. 이를테면 스타벅스에서는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라고 하는 것을 커피빈앤티리프에서는 ‘마키아토’라고 적는 식이다.

‘마키아토’는 원 숏의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얹은 것. 윤소영 매니저는 “에스프레소는 공기와 닿으면 향이 빨리 날아가는 특성이 있어 우유거품으로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섞은 제품. 쓴 맛을 약간 누그러뜨리면서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은 그대로 유지하는 제품이다. 일부 손님들은 이름 때문에 브루드 커피인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로 여기고 주문을 했다가 맛이 생각보다 강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에 데운 우유와 우유거품을 첨가한 것. 우유가 들어 있어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마시는 커피다.

우유와 우유거품의 첨가 비율은 조금 다르다. ‘카페라테’는 1온스의 커피에 11온스의 우유를 섞은 뒤 우유거품을 살짝 얹는다. 반면 ‘카푸치노’에는 우유를 덜 넣는 대신 우유거품을 풍부하게 얹는다.

그래서 ‘카푸치노’를 마실 때면 우유거품이 입술 주변에 잔뜩 묻게 된다. ‘카푸치노’는 봉긋 솟아오른 우유거품의 모양이 16세기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의 사제들이 쓰던 두건(카푸친)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카페모카’는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초콜릿시럽 혹은 가루를 섞고 우유거품을 얹은 뒤 그 위에 코코아 가루를 가볍게 뿌린 것. ‘에스프레소 콘 파나’는 에스프레소 원 숏 위에 생크림을 얹은 것이다. ‘카페라테’를 기본으로 하면서 바닐라 맛이 첨가된 ‘바닐라 라테’와 캐러멜이 첨가돼 달콤한 맛이 강한 ‘캐러멜 라테’도 있다.

● 주문은 이렇게

어느 에스프레소 전문점을 가더라도 ‘싱글’과 ‘더블’이라는 용어는 공통으로 쓰인다. ‘싱글’은 원 숏, 즉 1온스의 에스프레소를 가리키며 ‘더블’은 두 배인 2온스의 양을 지칭한다. 즉 정통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다고 할 때 많은 양을 원하면 ‘더블’을 주문하면 되는 것.‘에스프레소 더블’ ‘카푸치노 더블’ 하는 식이다.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은 커피점마다 사이즈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스타벅스는 ‘쇼트(short)’ ‘톨(tall)’ ‘그란데(grande)’ 등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뒤섞인 이름을 붙였다.

‘쇼트’는 식후 마시기에 적당한 양인 8온스가량의 음료가 들어가는 크기. ‘톨’과 ‘그란데’는 각각 12온스, 16온스 용량이다. 커피빈앤티리프에는 8온스짜리 컵은 없고 12온스짜리는 ‘스몰(small)’, 16온스짜리는 ‘레귤러(regular)’로 부른다.

대개 8온스, 12온스 음료에는 에스프레소 1숏이, 16온스 음료에는 2숏이 기본으로 들어가고 우유와 초콜릿 등 기타 첨가물이 나머지를 채우게 된다. 따라서 16온스 음료를 주문할 때는 ‘더블’이라는 말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이 밖에 좀 더 세세한 부분까지 가려서 주문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이 있다. 무지방 우유를 원할 때는 ‘논 팻(non fat)’, 우유거품을 빼고 싶을 때는 ‘노 폼(no foam)’, 우유는 빼고 우유거품만 얹고 싶으면 ‘드라이(dry)’로 주문하면 된다. 추운 날 테이크아웃을 할 때 온기를 오래 유지하려면 우유거품이 많을수록 좋으므로 ‘엑스트라 폼(extra foam)’으로 주문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굳이 외국어를 써가며 주문할 필요는 없다. 이현승 매니저는 “굳이 복잡한 전문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커피의 맛이나 진한 정도, 양 등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하면 거기에 맞게 만들어준다”고 조언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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