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가 ‘제2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 2002·26일∼11월24일)’에 초청돼 25일 내한했다. 아시아권 국가에 처음 방문하는 그는 28일 오전 10시 이화여대 법정대 강당에서 비엔날레 행사의 일부로 개최되는 국제심포지엄 ‘루나스 플로우(Luna’s Flow·달빛 흐름):www.transmedia.com’에 참석해 ‘이미지의 폭력’을 주제로 발제 강연을 한다.
특히 이날 발표되는 발제문은 그가 이번 심포지엄을 위해 새로 작성한 것으로,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대 사회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미지’에 관한 그의 최근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는 이 글에서 공격, 억압, 강간, 알력, 모욕, 강탈 등 이전의 일차적 폭력과 다른 현대 사회의 폭력에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정보, 미디어, 이미지, 스펙터클의 폭력으로 이는 ‘이미지의 폭력’으로 상징된다.
보드리야르는 무엇보다도 이미지와 정보의 ‘유독성’을 강조한다. 그 유독성이란 바로 현실 세계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무관심이란 유독성이 폭력을 밀쳐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폭력은 악이 드러나도록 했고 때로는 악이 사라지게도 했지만, 현대사회의 폭력과 유독성은 악을 투명하게 감춰준다. 이 ‘유독성’은 고전적인 폭력과 달리 별다른 저항 없이 암세포나 바이러스처럼 끊임없이 증식하며 퍼지면서도 폭력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상은 사진이 되는 순간부터 문제제기를 멈추고, 사람들은 합성된 이미지를 통해 위조된 현실을 엿보는 데만 익숙해지며 그 속에서 ‘완전범죄’는 최신형 스포츠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상황극과 같은 TV 드라마나 영화 역시 사실이 아니라 현실과 단절되어 우회하고 파생된 가상적 이미지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는 과다 이미지 아래 실종된 현실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다. “대상은 분석이라는 유일한 관점만이 풀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즉각적인 해답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26일 개막식을 비롯한 비엔날레 행사에 참가하고 30일 KBS-1TV ‘TV 책을 말하다’ 녹화를 마친 뒤 10월2일 출국한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73) 전 파리 10대학 교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사상가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한 가장 탁월한 비평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66년 낭테르대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을 토대로 완성한 ‘사물의 체계’(1968) 이후 최근의 ‘불가능한 교환’(1999)까지 30여 년에 걸쳐 20여 권의 저작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이론은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문화이론과 미디어, 예술, 자본주의 사회론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 이론인 ‘시뮬라시옹(Simulation·가상성)’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실재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 세계이며 현대인들은 물질이 아닌 이 가상성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 저서로 ‘소비의 사회’(1970),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1972), ‘생산의 거울’(1973), ‘섹스의 황도’(1976),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1981),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1991), ‘토탈 스크린’(1997) 등이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