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초 고암 이응노(1904∼89)는 이렇게 말했다. 독특한 추상 미술로 유럽 미술계를 놀라게 할 때였다.
고암의 유명한 문자추상(70년대)과 군상 연작(80년대)의 단초를 보여주는 60년대 추상화가 한 자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 12월21일까지 계속되는 ‘60년대 이응노 추상화전-묵(墨)과 색(色)’.
파리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한 1960년대의 추상화 소품 120점이 전시된다. 모두 미공개작.
전시작들은 소품이나 대작 못지 않게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필법의 대범함이 두드러진다. 추상이지만 문자 모양을 띠기도 하고 문자는 사람의 형상을 띠기도 한다. 사람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형상일 때는 고암의 말처럼 율동감이 넘쳐난다. 획 하나 하나엔 꿈틀거리는 어떤 기운이 숨겨져 있다. 그의 추상은 따라서 삶의 족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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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추상은 동물의 형상이기도 하고, 풍경을 수놓은 나무이기도 하고 꽃이기도 하다. 사람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된 추상이었다. 이같은 작품은 그의 문자 추상과 군상 연작의 발판이 되었다.
60년대 고암의 추상엔 동양화 특유의 시적인 흥취와 모두 한국적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점과 선의 추상이지만 그 점과 선 사이로 여백의 미학이 돋보인다. 은은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룬다.
먹물이나 채색 안료를 헝겊에 묻혀 종이 위에 살짝 찍고 그 위에 다시 붓으로 점과 선과 점을 완성하는 표현 기법이나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도록 해 번짐의 효과를 보여주는 표현 기법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응노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고암 학술논문상을 공모한다. 마감은 12월31일. 월요일 휴관. 02-3217-5672.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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