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거기’(원제 The Weir)는 앞 만보고 달리는 현실에서 한번쯤 슬쩍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떠올리게 한다.
극의 배경은 강원도의 부채끝 마을. 피서철에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외진 곳이지만 카지노 휴양지가 건설되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고 ‘향락의 도시’로 변해가는 고향을 은유한 것.
이 마을의 작은 술집에 강원도 남자 4명과 서울에서 온 김정이라는 여인이 만난다. 촌과 도시 사람들은 서먹함을 잊기 위해 농담을 던지며 술을 권한다. 술잔을 서로 권하며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바뀌었을 무렵 등장하는 안주가 ‘괴담’. 이웃집 할머니가 죽은 뒤에도 집 주위를 서성인다거나, 공동묘지에서 귀신을 만났다는 강원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등골이 오싹하게 만든다. 그러나 서울에서 온 여인은 덤덤하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
그 사연을 알게 된 술집 사람들은 한 여인을 위로하면서 불신과 갈등, 지방과 도시의 벽을 허문다.
결국 이들이 나눈 이야기들은 과거에 겪었던 슬픈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귀신에 가슴 아파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며.
‘거기’는 인간의 희로애락과 아팠던 과거를 되새기며 ‘그래도 내일은 살 만하다’는 미래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정원중 이대연 박원상 등 영화와 TV에서 활동중인 배우들의 웃기고 울리는 연기는 이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번역을 맡은 성수정씨가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코너 맥퍼슨 원작을 강원도의 구수한 사투리와 지방 특유의 인심으로 각색해 한국적인 맛을 살렸다.
담당 연출가 이상우씨는 “‘거기’의 핵심은 고향에 대한 향수 혹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 있다”며 “공연을 보고 공포나 슬픔이 아닌 미소를 지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각 배역을 더블 캐스팅했고, 색다른 재미를 주기 위해 요일마다 출연진이 뒤섞여 등장한다. 박진영 김승욱 최덕문 전혜진 박지아 민복기 오용 출연. 11월3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4시반(월 쉼). 1만2000∼2만원. 02-762-0010.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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