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 강물이 흐를 뿐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바 신의 숨결은 히말라야에서 흘러와 인도의 북부를 길게 가로지르며 산과 들을 적시고 모든 산 것과 죽은 것을 감싸안으며 벵갈만으로 사라진다, 오래 전부터 그러했듯이.
동트기 전, 인도인들이 갠지스강과 가장 성스럽게 만난다는 바라나시에서는 첫 햇살과 함께 시바 신을 맞이하기 위해 강변으로 향하는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그들은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며 시바 신의 생명력을 받고 그 강가에서 죽은 자를 불태워 시바 신의 곁으로 떠나보낸다. 이 행위를 두고 힌두교의 제의(祭儀)라고 한다면 힌두교는 ‘또 하나’의 종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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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인도인의 삶의 양식(樣式)이에요.”
집안 대대로 힌두교를 믿고 있다는 이 인도인은 힌두교를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로 취급하는 데 반대했다. 힌두교의 성지라는 바라나시의 역사가 3000년이 넘고 힌두교의 대표적 경전이라는 ‘베다’의 성립 연대는 기원전 1500년 경이라지만, 힌두교가 본래 인도의 토착 신앙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을 보면 그 뿌리는 도대체 가늠하기가 어렵다. 창시자도 없이 인도인의 삶이 그 기원이라면 힌두교의 창설 연대는 의미가 없다.
이런 ‘숫자놀음’은 인도인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인도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 힌두교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다가 인도로 흘러들어온 종족들의 다양한 농경·유목문화와 융합돼 지금의 ‘인도’가 됐다. 기존 문화가 새 문화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들이 믿고 있는 업(業·karma)과 윤회(輪廻)처럼, 인도에 들어온 모든 문화는 인도의 업이 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끌어안으며 성(聖)과 속(俗)이 하나가 되어 인도인의 삶 속에서 윤회한다. 그렇다면 이런 힌두교에 대해 ‘종교’라는 개념은 너무 작은 게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 가족이 모시는 신이에요.”
그 인도인의 집안에 마련된 자그마한 기도실에는 10여 개의 액자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모두 ‘신’이었다. 그림으로 그려진 신들과 성자로 추앙된다는 사람들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누가 더 위대하거나 성스러울 것도 없이 모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신’이었다.
인도에는 힌두교도가 80% 이상을 차지한다지만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종교도 있다. 그래서인지 인도의 ‘종교 분쟁’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친구는 이슬람교도이고 저는 힌두교도지만 종교적 갈등은 없어요. 정치가들이 조장하는 갈등이 서구인의 눈에는 종교 분쟁으로 비쳐지는 것이지요.”
마하트마 간디가 이렇게 말했단다. “힌두교인은 더 훌륭한 힌두교인이 되고 기독교인은 더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고 이슬람교인은 더 훌륭한 이슬람교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뿐이다. 자신이 태어난 대로 부모를 따라 종교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니 다른 종교의 영역에 침범해 억지로 포교를 할 일도 없고, 포교가 없으니 갈등이 있을 리 없다.
소와 돼지, 개와 원숭이, 당나귀와 염소, 그리고 사람. 이들이 우마차, 자전거, 자동차와 함께 지상의 도로를 함께 사용하는 바라나시의 거리에서 종교에만 명확한 경계선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분명 ‘편견’이었다. 얽히고 설킨 카스트제도와 1600여 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것도 이 모든 구조적 다양성과 오랜 시간의 역사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델리의 바하이(Baha’i) 사원(일명 로터스 템플·Lotus Temple)에 간 적이 있다. 17세기에 페르시아의 한 성자로부터 비롯됐다는 바하이 종교의 이념은 ‘모든 다양성의 포용과 조화’였다. 어떤 신상(神像)이나 벽화도 없이 오직 텅 빈 공간에 사람들이 고요히 명상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의자만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오전 10시, 힌두교와 기독교와 자이나교의 세 사람이 나와 돌아가며 찬송을 했고 사람들은 경건하게 앉아 함께 기도했다. 이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는 종교’의 사원은 인도의 수도인 델리의 명물이 돼 있다.
갠지스강을 뒤로 하고 소와 사람과 차가 함께 뒤섞여 자연스레 ‘난장’을 이룬 거리를 빠져나올 무렵, 거뭇거뭇해지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천지를 울리고 지상을 압도하며 퍼부어대는 아열대의 굵은 빗줄기. 함께 가던 인도인이 말했다.
“이 비는 황금의 신(Golden God)이에요.”
이들은 모든 것에서 신을 느낀다.
갠지스강에서는 또 한 번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 게다. 황금의 신이 시바 신과 만나 하나가 되는 축제.
바라나시(인도)〓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