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의 영화 ‘할리우드 엔딩’에서 에드가 ‘테스트 스크리닝(Test Screening)’의 관객 설문조사지를 읽는 장면).
《할리우드의 어느 프로듀서가 이런 관객 반응을 듣고 가만있을까. 우리가 보는 할리우드 영화중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대로인 영화는 과연 몇 편이나 될까? 영화에 끝없이 첨삭이 가해지는 할리우드에서 최종 리트머스 시험지는 영화 완성 직전에 치러지는 ‘테스트 스크리닝’이다.》
#1: 테스트는 힘이 세다
|
‘패트리어트’에는 원래 홀아비가 된 멜 깁슨이 처제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있었으나 다 잘려나가고 가벼운 키스만 살아남았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제작진들은 결말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세트를 다시 짓고, 배우들을 다시 불러와야 했다. ‘프루프 오브 라이프’에서 멕 라이언과 러셀 크로의 베드신은 삭제됐고,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마지막 장면에서 줄리아 로버츠의 댄스 파트너는 섹시한 남자에서 게이 친구로 바뀌었다. 이 모든 결정은 누가 한 것일까? 테스트 스크리닝의 관객들이다.
▼글 싣는 순서▼ |
할리우드에서 테스트 스크리닝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만큼 오래됐지만 광범위하게 확산된 결정적 계기는 1987년 개봉된 ‘치명적 유혹’. 테스트 관객들은 악녀 글렌 클로스가 자살하는 대신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고, 그렇게 바꾼 결과 이 영화는 대성공을 거뒀다.
영화의 타깃 관객 층을 선발해 진행되는 테스트 스크리닝은 한 영화당 3번, 많게는 10번씩도 열린다. 코미디와 스릴러, 속편 영화의 경우 테스트 스크리닝이 필수. 80% 이상의 관객이 좋다고 반응하면 잠재적 히트작, 55% 이상은 보통으로 간주되며, 그 이하면 ‘손질’에 들어간다.
#2: 테스트의 부작용
|
영화사 경영진은 테스트를 ‘안전판’으로 여기지만, 감독들은 이 절차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은 “영화사 경영진이 영화 결말을 바꾸고 싶으면 자신들의 시각을 지지해줄 관객들을 모아 테스트를 조작하기도 한다”고 비난했다.
테스트를 많이 하면 할수록, 영화가 더 재미없어지는 경우도 잦다. 프로듀서 더그 윅은 “테스트는 영화를 획일화시킨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기껏해야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대신 좋아하지도 않는 영화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테스트 참가자가 미래의 전체 관객을 대변하지 못하므로, 흥행 예측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케이프 피어’ ‘스튜어트 리틀’ ‘세븐’ ‘오스틴 파워 2’는 모두 테스트 결과가 나빴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 반면 ‘타이탄 A.E’ ‘해피 텍사스’는 테스트 결과가 좋았지만 흥행에 참패했다.
#3: 클수록 감춰라!
|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테스트 스크리닝을 기피하는 추세가 생겨났다. 테스트 참가자들이 인터넷에 악평을 띄워 미완성 영화에 대한 루머가 꼬리를 무는 부정적 영향 때문.
큰 영화들이 ‘크게 치고 빨리 빠지는’ 개봉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한 이유다. 큰 영화일수록 개봉 첫 주말 흥행에 승부를 거는 마당에, 행여 있을지도 모를 악평이 이를 망치도록 할 수는 없는 일. 이 때문에 ‘스파이더 맨’은 감독, 프로듀서의 가족과 친구들 100명만 불러 테스트 스크리닝을 했고, ‘맨 인 블랙 2’ ‘스타워즈: 에피소드 2’도 마찬가지다. ‘반지의 제왕’ 1편은 뉴라인 시네마 직원들만 상대로 테스트 스크리닝을 했다. 관객의 시각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테스트 스크리닝 본래의 목적도 이제 빛을 바랬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