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란 시간은 참 길다. 엄마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젖먹이가 그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사춘기 아이가 되고,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될 것만 같았던 초등학생이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어른’이 되는 시간이다.
이 책은 그런 10년 동안의 이야기다. 전남 진도에서 유자 농사에 실패하고 빚에 몰려 인천 만석동으로 이사온 네 남매, 상윤, 상민, 상미, 상희의 초등학교 때 일기다.
1990년은 첫째 상윤이가 일기를 썼다. 진도 너른 바다를 보고자란 아이가 좁은 골목에 방 한칸짜리 집으로 이사 와서 느끼는 답답함이 읽힌다. 좁은 골목, 스티로폼 상자로나 볼 수 있는 꽃밭, 기름이 떠다니는 바다, 길게 늘어선 공동 화장실 줄. 그래도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1993년 둘째 상민이의 일기에는 친구들이 보인다. 좁은 집에서 벗어나 골목쟁이에 모인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든다. 옥수수 서리를 하기도 하고, 고스톱 판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하고, 자장면을 실컷 먹기 위해 중국으로의 밀항을 꿈꾸기도 한다. 그래도 ‘종갓집 장남’이라고 자신을 추스르는 걸 보면 은근히 웃음이 난다.
1997년 셋째 상미의 일기는 슬프다. 그 전의 이야기가, 힘들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야기였다면 이젠 그 사람들이 흩어지려 한다. 넓은 길을 내기 위해 동네가 조금씩 없어지고, 사람들은 이곳에서조차 밀려난다. 엄마 아빠는 돈 때문에 싸우고, 선원학교로 실업학교로 가는 오빠 언니는 이 가난이 대물림 될까봐 초조하다.
2000년 넷째 상희의 일기는 읽고 있으면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다. 상희를 둘러싼 두 가지 삶은 너무 대조적이다. 이 마을을 짓누르며 서있는 아파트에 사는 짝과 영양실조로 머리가 한 웅큼씩 빠지는 친구 진숙이. 그래도 상희는 집을 새로 지으며 꽃밭을 만들 희망을 갖는다.
10년이면 고향을 떠날 때의 절박함은 없어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삶은 우울하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상윤이 상민이가 성인이 돼 살아가는 삶이 시작된다. 2010년 이 아이들은 어떤 일기를 쓰고 있을까.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나 ‘종이밥’에서 가난하게 사는 아이들을 사실적으로 그리던 작가는 우리에게 또다시 사는 이야기 하나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가장 간단한 도구인 연필로 그린 그림도 감정 전달에 큰 몫을 한다.
김혜원 주부·서울 강남구 일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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