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상상력’ ‘전복적 실험정신’ ‘우리 소설의 힘’을 기치(旗幟)로 내건 ‘작가’ 시리즈(책세상)의 1차분이 출간됐다.
최인석의 ‘서커스 서커스’와 하창수의 ‘함정’, 신장현의 ‘사브레’, 신승철의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등 모두 4권.
이 시리즈는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국내 작가들의 실험적인 순수소설을 다루겠다는 목표아래 시작됐다.
출판사측은 이 시리즈에서 “특정한 경향이나 독자층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과 문제의식이 자유롭게 표출된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원고지 500∼1000장 정도 분량의 중편 또는 경장편 소설을 대상으로, 문예지나 다른 매체를 통해 발표되지 않은 순수 전작 작품을 시리즈로 엮겠다는 것.
이미 발표된 작품을 다시 묶어내는 출판 관행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의도에서다.
소설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을 싣는 대신, 책 말미에 작가와 독자의 대화로 이뤄진 ‘만남’을 마련한 점도 특징.
이를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 및 문학적 배경을 보다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이 만남은 ‘작가’ 홈페이지(writers.bkworld.co.kr)를 통해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최인석의 ‘서커스 서커스’는 교통사고로 외아들 승호를 잃은 중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자취를 좇아 인터넷의 세계로 뛰어드는 이야기.
아들이 살아있을 때는 약자의 삶을 살까봐 아이의 모든 희망을 빼앗았던 그가 아들이 죽고 나서야 아이의 삶과 꿈을 이해하게 된다. 죽은 아들의 삶을 인터넷을 통해 되밟아 가며 그곳에서 물신자본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을 본다.
하창수의 ‘함정’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댄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나는 너인가, 이곳은 어딘가. 정신병 환자들의 임상보고서와도 같은 이 소설의 화자는 20여년간 환자들을 돌봐온 정신병원의 보조의.
신장현의 ‘사브레’는 전직 애니메이터였던 한 남자가 소설가와 정신병자 사이를 오가며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분열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의 첫 소설집 ‘세상 밖으로 난 다리’에서 주목했던 병들고 온전치 않은 인간 군상에 대한 관심의 연속이다.
신승철의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뭇 새롭다. 대학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을 둘러싼 각종 공문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기존의 소설 양식을 탈피한 이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오가는 공문서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광기, 허위를 드러냈다.
‘작가’ 시리즈는 앞으로 박상률을 비롯해 박인홍 호영송 엄창석 송경아 등의 작품을 출간할 예정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