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전숙희가 소설로 밝히는 여간첩 김수임의 진실

  • 입력 2002년 10월 14일 18시 10분


1950년 6월 15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수임. 그의 사랑은 비극적인 종말로 끝났다.-동아일보 자료사진-
1950년 6월 15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수임. 그의 사랑은 비극적인 종말로 끝났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죄목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나이는 서른아홉 살, 6·25전쟁 불과 며칠 전, 비정한 해방공간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원로작가 전숙희씨(82)는 1950년 6월, 한강 모래밭에서 심장을 관통하는 다섯 발의 총알로 짧은 생을 마쳐야 했던 김수임의 삶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김수임을 담아 낸 소설의 제목은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정우사).

전씨는 “순진무구하고 사랑 밖에 몰랐던 이 맹꽁이(김수임)가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일생을 마타하리란 말을 들어야 했던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진실을 밝혀 해명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수임의 이화여전 후배로 친동생이나 다름없이 지냈던 전씨는 한동안 김수임이 베어드 헌병사령관과 살림을 차렸던 서울 종로구 옥인동 저택에서 같이 살기도 했었다. 그는 “수임언니가 자신의 비밀, 첫 사랑의 애달픈 이야기를 나에게만은 숨김없이 털어놓곤 했다”고 회상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1929년말. 함경북도 함흥형무소에서 원산노동자 총파업에 개입한 죄로 옥살이를 하게 된 경성제대 졸업반 이강국, 모윤숙을 따라 그를 면회하러 온 이화여전 2학년생 김수임. 비극적 사랑의 두 주인공이 맞이했던 첫 만남이었다.

남북분단과 이념대립으로 어수선한 해방공간에서 이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다. 보름 뒤에 돌아온다며 평양으로 떠난 이강국이 돌아오지 않자 김수임은 자신에게 구애하는 베어드 사령관과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1년여 뒤 남로당 재건이라는 임무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 온 이강국과 재회한 김수임은 사령관 몰래 그를 만난다.

이강국은 1947년 9월 남한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하지 군정장관에 대한 반대공문을 공포해 긴급체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김수임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숨어 있다가 의사로 변장한 뒤 베어드 대령의 차를 타고 개성으로 월북한다.

이 사건으로 간첩죄로 체포된 김수임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이강국도 북한에서 ‘남로당 숙청’ 사건에 연루돼 1955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전씨는 “이제야 그 숨겨졌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데올로기와 관련이 돼 있기 때문에 터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늘 마음 속으로 수임언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으로 울며 집필을 거부해왔다”며 “그러나 이번 한일월드컵에서 한마음 한뜻이 된 젊은이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들에게 해방 공간의 그 많은 비극 중의 하나, 내가 아는 이 한 가지 진실만이라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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