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南女北女 ˝언니, 솔직히 말해봐˝

  • 입력 2002년 10월 17일 16시 16분


이혜경,한현선,최진이,장미영(왼쪽부터)
이혜경,한현선,최진이,장미영(왼쪽부터)

《14일 막을 내린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 최대 스타는 미모의 북한 여성 응원단원이었다.

‘역시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식으로 이들이 연일 화제를 모으자 ‘뭐가 예쁘다는 건지 다들 똑같은 가식적인 표정하며…’

(인터넷 ‘다음’에 개설된 북한예술단원 조명애 팬클럽 논쟁 중)등의 ‘안티 북녀(北女)’ 여론도 고조됐다.

대부분 “이 모든 것이 여성의 미모에 초점을 둔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빚어진 게 아닌가?

북한 여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로 마무리되고 있다.

토요일인 12일 오전 서울 성북동 삼청각. 탈북여성인 이혜경(38) 최진이씨(43)와 남한 여성 장미영(40) 한현선씨(30)가 만났다.

‘동원된 미인’이 아닌 북한 여성들의 실제 생활, 북한 여성이 호기심을 갖는 남한 여성의 삶을 ‘쌍방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네 사람의 남녀북녀(南女北女)는 2시간 동안 패션, 쇼핑, 육아, 자녀교육, 남녀관계 등에 대해 오래 사귄 친구들처럼 때로는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패션리더, 김정일 위원장

장미영〓이번의 북측 응원단은 다들 나이키 모자를 썼더라고요. 미국 자본주의의 대명사격인 브랜드를 쓰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

이혜경〓그 상표는 북조선에서도 자주 봤더랬어요. 그런데 북조선 사람들은 모두 중국제인줄 알아요. 저도 미제인줄은 여기 와서 알았다니까요. 기건 기렇고, 남한 여성들은 옷이 보통 10∼20벌은 되더라고요. 고조 여기 와서 옷차림 때문에 아주 신경쓰여 죽갔어. 할인 마트나 백화점에 가보면 젊은 여자들이 상품차(쇼핑용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싣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다 사는데 그게 다 필요한 건가? 나는 한 두 개 사면서도 쥐었다 놓았다 수십번씩 고민하는데….

한현선〓좀 헤퍼보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다 필요한 건 맞는데…. 특히 일하는 여성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서 쇼핑을 하니까 어쩔 수가 없어요. 북한에도 쇼핑은 있잖아요?

최진이〓백화점은 있어도 물건을 안 파니까니. 임신했을 때 머리를 식히러 평양1백화점에 자주 갔었는데 갑자기 사탕 한 알이 너무 먹고 싶었지 뭐야요. 판매원한테 좀 팔라고 3시간을 졸라도 눈 한번 꿈쩍 안하더라고요.

한〓북한에도 패션 잡지 같은 게 있나요? 패션 트렌드나 뷰티 트렌드 같은 게 없을 리 없죠?

이〓….

장〓옷이나 화장에 유행이 있는지 여쭙는 거예요.

이〓아, 패숀은 귀국자들(북송 재일동포 등 외국에서 살다 들어온 사람)이 어떻게 입는지 많이 보지. 평양 여자들이 제일 세련됐으니까니 그쪽 여자들 옷차림도 보고…. 긴데 북한은 단체복 위주라 감각들이 좋지는 않지요.

최〓북한에도 ‘조선 녀성’ 같은 여성잡지가 있기는 한데 요리법은 있어도 이런 저런 화장품을 써라, 이런 옷을 입어라 같은 정보는 없었시요.

장〓그럼 유명 연예인들 옷차림을 보고 따라 입는 사람도 없을까요?

이〓흔치 않지요. 텔레비가 많지 않으니 잘 모르고. 오히려 가장 자주 접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흉내를 낼라치는 남자들은 많지요. 90년대 중반인가 김 위원장이 사냥꾼 모자(헌팅 캡)를 열심히 쓰고 다니니까 온통 남자들이 다 쓰고 다니더만.

최〓6·15 남북 공동선언 무렵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입었던 국방색 잠바도 인기가 그만이었더랬어요.

한〓아, 블루종 스타일의 카키색 잠바 말이죠? 그거 보면서 나일론 소재 ‘프라다 천’ 잠바 아니냐고 수군댄 적 있는데….

최〓화장은 여기(남한) 여자들이 정말 많이 하지요. 다들 시뻘겋게 쳐바르고 다니는데 처음엔 놀라서…. 북조선에서는 80년대 중반에 ‘기름크림’이랑 ‘피아스(파운데이션)’가 보급됐는데 완전 코메디였디. 다들 얼마나 두껍게 칠했든지 남자들이 “못 알아 보갔다”고 아주 싫어했디요. 화장이 대중화되는 과도기였던 거지.

이〓미용실에서 한 번 머리하는 데는 20원쯤 들어요. 대학 졸업한 사람 한 달 월급이 평균 120원이니 엄두를 못내요. 경제가 어려워지고부터는 고조 길게 길러 뒤에 깍지핀 끼는 게 유행입네다(이씨는 북한의 임금과 물가가 오르기 전인 2001년 탈북했다).

●북녀(北女)는 강하다.

장〓남한의 보통사람들이 처음으로 가까이 접한 북한 여성이 이번 응원단원들이어서인지 이들을 기준으로 자꾸 여쭙게 되는데요, 정말 예쁘긴 하던데요.

이〓그 여성들을 보고 북한 여자들이 다 이쁘다고 침을 질질 흘려대면 우습디요.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도 전국에서 처녀들을 모집했습네다. ‘키 160㎝ 이상’, ‘계란형 얼굴’처럼 조건을 달고 고장마다 미인들을 평양으로 올려 보내 기수단을 구성했다던데 다 뽑혀 나온 아이들이니깐 이쁜 것 아니갔시오?

최〓국경지대에 사는 북한 사람들이나 중국에 사는 탈북자들은 남한 여자들이 더 고운 걸로 알고 있어요. ‘북한 여자들은 순종형’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디. 북한 여자들이 맘만 먹을라치면 얼마나 무서운데. 부부 싸움하는 모습을 한 번 봐야…. 나는 부부 싸움할 때 식칼도 들어봤는데….

모두〓호호호.

장〓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덴데 다 같겠죠. 하지만 북한 사회가 더 가부장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네요?

최〓훨씬 더 가부장적인 것은 사실이디요. 내가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는데 학급 동무들끼리 소풍을 가면 여학생들이 자진해서 “남자가 어떻게 짐을 들고 가나우”라고 대신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예도 있었으니까니요.

이〓가정 내에서도 가장인 남편이 항상 우선이지요. 요즘은 ‘아들만 두면 국제 고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딸을 잘 둬야 외국물도 먹어본다는 생각들이 난무하디만 남아선호사상도 여전히 많습네다. 남편이 아내 집어 때리는 건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죄로 생각하지 않고.

장〓여기도 남녀 차별은 있어요. 전 87년에 외국계 은행에 입사해 10년간 일했는데 면접 시험에서 “남자 상사에게 커피를 타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요즘은 사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최〓나는 북한에서 이혼까지 추진한 적이 있어요. 남편은 김책공대 핵물리학과를 졸업한 과학자였는데 나보다 열일곱살이나 많았어요. 첫사랑이 사상범 아들이라 집안에서 심하게 반대해 헤어졌고 남편의 성분을 보고 결혼한 거였는데 뜻이 잘 맞질 않았거든. 북한은 재판을 통해서만 이혼을 할 수 있어요. 그나마 이혼 판결을 받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결국 실패했고 ‘가정불화’등의 이유로 평양에서 쫓겨났지요.

●밤의 주인공, 한반도 아줌마.

한〓부부 성생활은 어때요? 여기는 40대부터는 남편에게 비아그라다 한약이다 정력보강제 투입에 힘쓰는 아줌마들이 많은데….

최〓다 똑같시오. 밤생활 주도권도 40대부터는 여자가 갖는 경우가 많아. 한 40대 남자동료는 “야, 밤마다 우리 마누라 때문에 못 견디겠다”는 말도 하더라고. 돈 있는 사람들은 남편 정기 보충한다고 약도 사 주고 한다드만. 거기도 남자나 여자나 불륜은 있어. 당 간부의 특권은 ‘여자 따먹기’라는 말도 있거든.

(남녀관계에 있어 진보적인 작가 조직에 있었고 평양에 오래 살았던 최씨와 지방의 보수적인 약계에 있었던 이씨는 다소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이〓그래도 남한 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편입네다. 난 서울 지하철에서 젊은 남녀가 쪽쪽대는데 봐 줄 수가 없더라고. 북한에서도 ‘남한은 부화방탕하다, 황색바람 짙게 분다’고 그랬디요. 열한살짜리 딸년을 붙잡고 “넌 어려서부터 남자랑 놀아쳐버리면 가만 안 두겠다”고 협박까지 했시오. 북쪽이 혼전 순결의식도 더 높은 편이고. 대학 때도 데이트만 해도 끝장을 봐야 한다(‘결혼해야 한다’는 뜻)는 생각이 있어서 함부로 이성 친구를 만나지 못했거든. 북에도 몸 파는 여자가 있다는 것은 여기 와서 알았지. ‘밤것’(밤에 몸을 함부로 굴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추정)이라고 한다든데.

최〓그래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조관념이 많이 사라졌디요. 세게 말하는 사람들은 “강력한 김정일 압제 체제에서 돈 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수단은 불륜뿐이다”라고도 했시오. 상습적인 바람쟁이들도 여럿 봤어.

한〓참, 남자들이란…. 여기는 원조교제 문제도 공론화 돼 있잖아요.

최〓 맞아. 평양에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디만 아주 센 벌을 내려야지. (한참 토론)

●한국 엄마는 아이에게 매인 듯

장〓북한은 애들 기르는 것 만큼은 참 편했겠어요. 여기는 어린이집, 시댁, 친정을 전전해야 하는 형편인데 북한에는 탁아소가 있어 나라에서 잘 길러주니까요.

이〓그렇긴 한데 장단이 있디요.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탁아소를 통해 한 조직의 일원이 돼 버리니까 부모랑 자식 정도 그리 깊어지지 않아요.

한〓그건 말도 안돼요. 저도 아침 일찍 아이랑 떨어져 저녁 늦게 잠깐 만나는데도 모정이 얼마나 애틋한데요.

최〓글쎄 부모 자식간에 구체적인 감정 전달을 잘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저는 임수경씨가 월북한 뒤 연단에 서서 했던 첫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엄마, 아빠 나 여기 있어, 여기는 비가 내리고 있어요”였지. 나는 그때 ‘남조선 학생들은 과년한 나이에 부모를 찾을 정도로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어. 여기서 살아보니까 자식 사랑은 본능이라지만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남한 사람 못 당할 것 같아요.

장〓교육열 때문에 그러시죠? 여기서는 어떻게들 공부시키고 계세요?

이〓나는 딸 둘 다 구청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공부방(방과 후 학습지도 프로그램)이랑 피아노 학원에 보내요. 영어가 제일 걱정인데 장 선생님한테 좀 조언을 구해야겠시오. 참, 얼마전부터는 이것도 모자란 것 같아 학습지도 배달시켰고.

최〓나도 아들을 저녁 8시까지 피아노, 태권도학원으로 ‘뺑뺑이’를 시키지. 요기 엄마들 다 시키는데 나만 가만있을 수는 없지. 북한도 교육열은 높은데 요즘은 경제 사정이 너무 나빠서 공부만 하라고 강요도 잘 안해. 오히려 ‘먹을 알’(의식주와 관련된 실용품) 생기는 장사나 판매원을 하라고 하디….

이〓참! 여기는 학교에서 왜 다 가르치지 않는지 몰라. 난 큰애는 북조선에서 초등학교를 입학시켰고 작은애는 여기서 시켰는데, 큰애 때는 유치원에서 다 알아서 가르쳐서 집에서 지도할 게 없었시오. 작은애도 여기서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다 알아서 하겠거니 했더니 애가 하루는 “다른 친구들은 한글이랑 영어랑 다 아는데 나만 모른다”고 뾰로통해 왔더라고. 시험이랑 숙제를 단단히 내달라고 선생님께 부탁 편지도 썼어요.

북한에서도 인텔리 계층의 교육열은 만만치 않디요. 초등학교 1, 2학년생들도 종합학습장 10장씩 단어를 써 내는 것 같은 숙제가 많다보니 제대로 해 가는지 바싹 지켜보며 감시하기도 했시오. 요즘은 물자사정이 나빠져 10장씩 쓰는 숙제 같은 것을 못 내 주지만….

최〓여기선 매일 아들 옷 빨아 해치우는 것도 힘들어. 탈북한 지 얼마 안 돼서 여기 정착을 도와주는 분한테 “애 옷 좀 신경쓰라”는 말을 들었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그럼 내 생활은 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했지 뭐요. 북한에서는 고조 일주일에 한 번씩 갈아입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애들 치장에도 신경을 너무나 많이 써야겠더라고요. 기건 기렇고 토요일인데 빨리 애 보러 가야갔다. 여기 경치도 좋은데 한번 다시 함께 오자우요.

일동〓아휴, 빨리 애 보러 가야겠네.

정리〓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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