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10분이 지난 오후 6시 40분.
‘키플링’ 배낭을 메고 송병준씨(42)가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주택문화관으로 성큼 들어섰다.
“주총을 마치고 이런 저런 회의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음악가로, 탤런트로 활동하던 그를 생각하면 뜬금없는 말이다.
명함에 적힌 그의 직함은 ‘홈씨네마디자인’과 ‘에이트 픽스’ 대표이사 두가지. 음향전문 기업과 드라마 외주제작 업체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올 들어 그는 삼성전자, 삼성물산(주택부문)과도 함께 일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제작하는 스피커의 경우 외부평가위원인 그가 성능을 측정한 뒤 일정 점수 이상을 주지 않으면 생산이 중단되거나 기획단계에서 폐기된다.》
삼성물산에서 운영하는 주택문화관에도 자주 들른다. 이곳에서 그의 역할은 홈시어터 설치에 관심있는 실수요자들을 만나 상담하고 때로 설치까지 도와주는 것. 얼마 전 분양이 끝난 서울 서초동 삼성아파트의 경우 계약자 가운데 25%가 빌트 인 스타일의 홈시어터를 신청했을 만큼 ‘집안 극장’에 대한 관심은 높다. 그렇다면 성공적으로 ‘홈시어터’를 갖추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음향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송씨의 지론이다.
●잘못된 상식은 버려라!
대표적으로 그릇된 상식이 ‘비싼 시스템이 좋은 품질을 보장한다’는 것. 송씨는 “대개의 사람들은 수천만원대의 비싼 시스템을 사서 100만원짜리처럼 쓰고 있다”고 말한다. 기기가 좋아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
“집도 좁은데 무슨…”과 같은 자학성 멘트도 그가 싫어하는 말이다. 3.5평 이상인 공간에는 어디나 설치할 수 있는 게 홈시어터 시스템. 중요한 것은 평수가 아니라 길이, 넓이, 높이 등 공간의 모양과 특색이다.
다음 고려사항은 비용. 주차장 크기에 따라 차종을 BMW냐, 프라이드냐로 선택하는 게 아닌 것처럼 평수가 아니라 충당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그가 질색하는 것은 “거실에 설치해주세요”라는 주문이다. 거실은 한쪽이 유리창으로, 한 쪽은 부엌이라는 뻥 뚫린 공간으로 연결돼 음질이 고르게 날 수 없다. 만약 거실에 놓을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유리창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 최대한 음이 반사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서브 우퍼를 한가운데 둬야한다’는 상식도 넌센스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음역 가운데 가장 낮은 20∼120㎐대역을 재생하는 서브우퍼 스피커는 뒤에 놓든 앞에 놓든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저음을 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홈시어터는 이렇게 설치하라’는 일반화된 매뉴얼을 그는 가장 싫어한다. 사람 얼굴이 각자 다르듯 공간의 모양과 재질에 따라 설치방법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것.
●영화를 즐기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극장용 영화를 즐기기 위한 약간의 원칙은 있다. 비용, 즐겨볼 콘텐츠, 설치환경에 따라 구분해본다.
먼저 음향기기만을 놓고 보면 음의 힘을 증폭시켜주는 앰프와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플레이어가 한 몸인 일체형에 5.1채널이 패키지로 들어간 제품이 가장 싸다. DVD와 앰프(리시버형)가 구분된 제품은 이보다 고가. 음량을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있는 프리 앰프와 전력을 골고루 뿌려주는 파워 앰프가 구분된 제품은 가장 비싸다.
홈시어터를 통해 영화를 주로 볼 것인지, 음악을 들을 것인지에 따라 스피커 설치는 달라진다. 음반 제작자들은 원형으로 스피커를 늘어놓고 만들기 때문에 최적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려면 이와 비슷한 모양새로 스피커를 놓아야한다. 반면 영화는 스크린 뒤에 일직선으로 스피커를 배열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극장을 기준으로 음향효과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실감음향’을 즐기려면 일렬로 스피커를 놓는 게 좋다(그림 참조).
뒤쪽 스피커(rear speaker)는 사람의 귀 바로 옆에 설치하는 것이 최악. 뒤쪽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은 최대한 방을 감싸서 ‘서라운드’ 음향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홈시어터가 설치된 공간의 소파에 앉았을 때 머리 위 60∼90㎝ 높이의 벽에 걸면 좋다. 부득이 스탠드형으로 세울 때는 스피커가 사람이 아니라 벽면을 향하게 해서 음이 벽에 부딪친 뒤 퍼지게 한다(그림 참조).
송병준씨는 “가정마다 방의 모양과 벽면, 바닥의 재질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스피커를 여러 방향으로 돌려본 뒤 가장 좋은 상태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송병준씨가 추천하는 ´음향효과가 좋은 영화´▼
●치킨런
포악한 트위디 여사의 닭 농장에서 벌어지는 닭들의 ‘생존투쟁’을 다룬 애니메이션. “자동차 소리 하나, 대사 하나도 어쩌면 그렇게 맛있게 만들어내는지….” 애니메이션에 쓰이는 효과음은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하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소리라 오히려 귀에 더 쏙 들어온다는 게 송씨의 진단.
●진주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미군기지 공습을 다룬 전쟁 영화. 비행기가 머리 뒤에서 앞으로 날아가는 생생함, 폭탄의 폭발음 등 여러 가지 음향효과가 정교하게 담겨 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
톰 행크스가 주연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전쟁 영화. 섬뜩할 정도로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그 장면을 생동감있게 이끄는 음향효과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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