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와인 시음은 바인구트(Weingut·와인농장)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독일의 와인생산지역을 여행하다보면 바인구트라는 간판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포도밭 주인의 집을 겸한 와인 양조장으로 땅 위에는 양조시설을, 땅밑에는 저장고를 갖추고 있다.
바인구트의 전형적인 모습은 포도밭 한가운데 성처럼 우뚝 건물이 서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바인구트가 포도밭과는 떨어진 읍내에 몰려 있다.
바인구트에는 와인 시음과 식사를 할 수 있는 바인슈투베(Weinstube·와인식당)가 딸려 있다. 국가나 지역조합 소유의 거대한 바인구트는 읍내 한가운데 전문 레스토랑식으로 운영하는 바인슈투베를 따로 갖고 있지만 가족 단위의 작은 바인구트는 집안에 가족식당을 약간 늘린 크기의 바인슈투베를 갖고 있다.
와인 시음은 전통적으로 낡은 와인 저장고에서 이뤄진다. 와인병에 꽂은 촛불들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어두컴컴한 와인 저장고로 내려서면 수백년 삭힌 효모 냄새가 풍겨온다.
날씨가 화창한 날 바인구트를 방문한다면 주인이 피크닉 바구니에 와인을 담아 직접 포도밭에 나가 와인을 시음하는 특별한 낭만을 선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간단하게 바인슈투베에 앉아 와인을 시음하는 경우도 많다.》
와인 시음에서는 한자리에서 5∼10가지 정도의 와인을 맛본다. 시음은 화이트와인에서 레드와인의 순으로 진행한다. 레드와인을 먼저 마시면 떫은 맛이 입안에 남아 신선한 화이트와인을 제대로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음은 아이스바인이나 베렌아우스레제와 같은 디저트용 고급 화이트 와인을 맛보는 것으로 끝낸다.
시음에는 꼭 탄산수가 따라나온다. 탄산수는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난 뒤 입안에 남아 있는 맛을 세척해 없앨 때 마신다. 와인 잔이 하나만 있을 때는 화이트와인에서 레드와인으로 넘어갈 때, 레드와인에서 다시 화이트와인으로 넘어갈 때 반드시 탄산수로 와인 잔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와인을 주는 대로 벌컥벌컥 마셨다가는 취하기 십상이다. 잔마다 한 모금 정도만 마시고 남은 와인은 테이블마다 한가운데 하나씩 놓여 있는 와인 처리용 병에 부어버리는 것이 좋다.
와인 시음시 안주로는 양념이 없는 독일식 검은 식빵이나 프랑스식 바게트가 제공된다. 맛이나 향이 강한 안주를 먹는 것은 시음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와인은 코로 눈으로 혀로 연애하듯 마시는 술이다. 와인을 받으면 우선 잔을 기울여 색깔을 감상한다. 그리고 잔을 흔들어 코에 대고 향을 맡는다. 그 다음에 한 모금을 입안에 털어넣고 혀의 앞 옆 뒤로 돌리면서 충분히 맛을 음미한다.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와인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씩 한다.
와인의 종합적인 향과 맛(아로마)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에는 문학작품의 번역처럼 곤란한 문제가 놓여 있다. 독일인 주인이 ‘이 와인에는 마라쿠야의 열매 향이 난다’고 할 때 마라쿠야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반대로 우리가 ‘이 와인에는 고구마 비슷한 맛이 난다’고 할 때 독일인 주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라인헤센 지방 노히슈타트에 있는 한 와인연구소의 울리히 피셔 박사는 독일인을 위한 아로마 휠(Aroma Wheel·향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이 적힌 카드)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아로마 휠은 본래 미국에서 영어로 만들어졌다. 그는 “이 아로마 휠을 막상 독일어로 번역해보니 우리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연구소에서 수년간의 과학적 검증을 거쳐 새 아로마 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서양인데도 이렇게 향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면 동서양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을 터이다.
프랑스산 보졸레 누보처럼 예외가 있긴 하지만 가을에 수확한 포도는 이듬해 봄에야 병에 든 와인으로 출시된다. 봄 여름에 와인페스티벌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고급 와인의 경우는 이듬해 가을은 돼야 출시된다. 2001년에는 2000년과 달리 포도가 잘 익었기 때문에 요즘 숙성한 멋진 와인 맛을 볼 수 있다. 또 수확기에 와인농장을 방문하면 포도가 와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독일에는 아르, 모젤-자르-루버, 나헤, 라인헤센, 팔츠, 헤시세 베르그슈트라세, 미텔라인, 라인가우, 프란켄, 바덴, 뷔르템베르크, 작센, 잘레-운스투르트 등 13개 주요 와인 생산 지역이 있다. 와인 생산자들의 정보화 수준이 높아 인터넷 검색엔진에 이들 와인 생산 지역의 이름과 바인구트 혹은 바인슈투베를 함께 입력하면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와인 생산지역의 도시를 방문하면 서점에서 주요 바인구트나 바인슈투베의 지도와 연락처가 적힌 책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바인구트는 주로 시골에 있기 때문에 찾아가려면 차를 빌려야 한다. 와인 한 병을 한잔씩 나눠마실 수 있는 정도의 그룹을 지어 찾는 것이 경제적이다. 일행 중 한 명은 운전을 해야 하므로 와인 시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뷔르츠부르크·마인츠〓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 서울시내 독일 와인점
한국에서 독일 와인은 프랑스 와인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다. 이 때문에 와인 전문점이라고 해도 독일 와인을 다양하게 갖춰놓은 곳은 드물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젤(02-797-6846)은 주한 외국인이 많이 찾는 와인숍. ‘에르데너 트렙첸 슈패트레제’ ‘트리텐하이머 리슬링 슈패트레제’ 등 6종류의 독일와인을 팔고 있다.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의 에노테카(02-3449-4413),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의 르클럽드뱅(02-558-9880), 한남동의 신동와인(02-797-9994), 인사동의 인사와인갤러리(02-734-1334)도 비슷한 종류의 독일 와인을 판매한다. 독일 와인의 가격은 대개 2만∼3만원대.
젤의 임재성씨는 “독일화이트와인은 비슷한 품질의 프랑스 화이트 와인보다 가격이 싼데도 손님들이 잘 몰라 찾지 않는 편”이라면서 “독일 화이트와인은 단 맛이 강하고 알코올 함유량이 8∼9%로 낮은 편이어서 와인 초보자들에게 특히 적당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독일 와인은 10여종. ‘뤼데스하이머 베르그 로틀란트’ ‘쉴로스 폴라트’ ‘율리우스피탈 뮐러투르가우’ ‘엘레슈타터 게뷔르츠트라미너’ 같은 브랜드다. 와인을 수입하는 한독와인의 김학균 사장은 “와인숍보다는 와인바에 좀 더 다양한 종류의 독일 와인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독일 와인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와인바로는 청담동의 까사델비노(02-542-8003)와 엘비노(02-541-4261), 홍대입구의 마고(02-333-3554), 강남역 인근의 나무(02-594-1211) 등이 꼽힌다.
까사델비노의 은광표 사장은 “라벨의 표기가 낯설다는 점도 독일 와인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독일 와인 가운데 고급으로 분류되는 와인의 등급 표기는 ‘카비네트’ ‘슈패트레제’ ‘아우스레제’ ‘베렌아우스레제’ ‘아이스바인’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등 6종류로 나뉜다. 뒤쪽으로 갈수록 더욱 고급이며 당도도 높아진다.
‘카비네트’는 정상적인 수확기에 딴 포도로 만든 와인. ‘슈패트레제’는 당분을 더 얻기 위해 정상 수확기보다 일주일가량 늦게 따서 만든 와인이다. ‘아우스레제’는 ‘슈패트레제’와 수확기는 같지만 그 중에서도 잘 익은 포도 송이만 엄선해서 담근 와인. 더 나아가 ‘베렌아우스레젠’은 좋은 포도알만을 골라 담은 것이다.
‘아이스바인’은 영하 7도 이하에서 포도가 얼어붙으면 수확해서 만든다.‘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곰팡이가 핀 포도가 건포도처럼 말라붙을때까지 기다렸다가 모아 만든다. 당분이 많으면서도 드라이한 맛을 풍기기 때문에 독일 최고의 화이트와인으로 꼽힌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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