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여러 모로 2년여 전 신세대 요리사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드라마 ‘맛있는 청혼’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남편 인씨는 듬직하면서도 한편으론 짓궂어 보이는 인상이 탤런트 정준을 닮았고, 아내 김수정씨는 복스럽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소유진을 빼닮았다.
게다가 이들의 연애담은 프라자호텔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할 만큼 극적인 요소까지 갖췄다. 1999년 6월 입사동기인 두 사람을 맺어준 것은 아내 김씨 말대로 ‘한창 멋부리기 바쁜 스무살에 고추장 된장 담그며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인고(忍苦)의 시절’ 때문이었다. 입사동기로 서로 눈물 콧물 섞은 하소연을 나누다 새록새록 정이 든 것.
하지만 위계질서가 엄격한 주방에서 까마득한 막내끼리 연애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호텔 냉동고에서 추위를 녹여가며 몰래 만났다. 또 누구를 사귀는지는 숨겨도 연애 중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게 되자 깜찍한 허허실실 전법까지 구사했다. 인씨는 간호사를, 김씨는 대학생을 가상의 애인으로 삼아 방패막이로 삼은 것. 그래서 호텔직원들은 한결같이 결혼발표를 듣고서 ‘아뿔사’하며 무릎을 쳐야 했다.
두 사람은 그러나 실제 생활은 ‘맛있는 청혼’과 한참 거리가 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드라마에서는 그저 하루 고생하면 훌륭한 요리가 툭 만들어지잖아요. 훌륭한 요리는 그렇게 뚝딱 만들어질 수 없어요. 수많은 세월이 켜켜이 쌓이고 땀과 눈물이 배어야죠.”
실제 이들의 식탁은 오히려 라면이 주메뉴라고 했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호텔 주방 일만으로도 파김치가 되는 탓에 정작 집안 식탁의 진수성찬은 꿈도 꿀 수 없단다.
늦둥이로 태어나 응석받이로 자란 인씨는 고교시절 연로한 아버지가 덜컥 병석에 눕고서야 조리사의 길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넥타이 매기를 바랬던 아버지는 그가 조심스럽게 내민 조리사 자격증을 외면한 채 돌아가셨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그만하면 만족하다 할 만큼 이 분야 최고가 되는 일, 제가 늦게나마 효도할 길은 그것밖에 없어요.”
임신 5개월인 김씨는 하루 몇 시간씩 서서 일을 하느라 다리가 퉁퉁 붓지만 150여명의 프라자 호텔 조리사 중 단 6명뿐인 여 조리사로서의 꿈은 더욱 다부지다.
“지금이야 힘들기 그지없지만 먼 훗날을 생각하며 참아요. 그나마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큰 축복이죠.”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