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페미니즘 문학비평’ 케임브리지大 질리언 비어 前학장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7시 57분


/강병기 기자
/강병기 기자
세계적 권위의 영문학자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으로 꼽히는 질리언 비어(67) 케임브리지대 클레어 홀(Clare Hall) 칼리지 전 학장이 19일 한국을 찾았다. 비어 교수는 94년 교수 직선제로 클레어 홀 학장에 뽑혀 2001년 임기를 마쳤다. 13세기부터 시작된 케임브리지대 역사에서 여자 칼리지의 경우를 제외하고 남녀 공학 칼리지에서 여성이 학장으로 취임한 것은 비어 교수가 처음.

버지니아 울프와 조지 엘리엇에 관한 권위자로 인정받으며 페미니즘 문학 비평에서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비어 교수는 98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남성의 ‘경(Sir)’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비어 교수는 한국영미문학 페미니즘학회(24일 1시, 25일 오전 9시 서강대 마태오관)와 근대영미소설학회(26일 오전 10시 성신여대 대강당) 학술대회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20일 비어 교수를 만났다.

-케임브리지 칼리지 중 최초의 여성 학장이라는 데에 어떤 의미를 둘 수 있나.

“나의 경우는 확실히 케임브리지대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 남녀 공학 대학에서 여성도 학장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준 셈이다. 내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의 다른 칼리지에서도 여성학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클레어 홀이 케임브리지의 전통과 역사를 다시 세우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영문학상의 페미니즘 문학 비평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80년대 말의 일이고 학회가 생긴 것은 92년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분야인데.

“페미니즘 문학 비평은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관점을 바꿔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문학 비평은 서구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학문이 됐다. 나는 94년 영국 왕실로부터 영문학 최고 권위자에게 주는 ‘에드워드 7세 교수’로 임명됐다. (‘에드워드 7세 교수’는 문학 역사 등 학문 전 분야에 걸쳐 영국 전체에서 12명의 학자에게만 주어지는 타이틀 중 하나) 영문학에서 최고로 인정받는데 내 전공인 페미니즘 문학 비평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 진행중인 페미니즘 문학 비평에 관한 견해는.

“미국의 페미니즘 비평이 문학 텍스트에 초점을 맞추고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해 영국의 학풍은 사회학적 또는 과학사적인 접근을 병행하는 것이다. 문학과 당시 사회와의 상관 관계를 연구하는 것에서 문학 비평은 출발한다. 19세기 여성 작가 조지 엘리엇의 경우 실제로 그녀 자신은 여성적 이슈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그녀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과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는 것이 문학 비평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페미니즘 문학 비평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가.

“우선 내가 한국어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영문학에 관한 비평이라고 해도 아시아권의 학문적 업적은 영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진 연구 결과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좁은 견해’를 드러낼 수 있으므로 아시아권의 페미니즘 문학 비평을 섣불리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기대는 있다. 아시아는 서구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의 페미니즘 문학 비평가들이 어떤 시각으로 텍스트에 접근할 것인가에 호기심이 생긴다. 또 그들이 영문학을 비평한다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자들이 지나쳤던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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