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신숙주는 뛰어난 大학자”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7시 57분


1445년경 중국 화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신숙주의 초상화. 보물 제613호./동아일보 자료사진
1445년경 중국 화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신숙주의 초상화. 보물 제613호./동아일보 자료사진
보한재 신숙주(保閑齋 申叔舟·1417∼1475)의 이름을 접하면 언뜻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가담한 신하, 혹은 성삼문(成三問)과의 의리를 저버린 인물로 떠오른다.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나 계유정란을 소재로 한 사극에서 빈번히 묘사됐던 ‘정치인 신숙주’의 일면 때문이다.

신숙주에 관한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후인들의 폄훼에 기인한 것이 많다. 이로 인해 ‘음운학자 신숙주’ ‘문학가 신숙주’의 면면이 묻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문화관광부가 신숙주를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면서 ‘대학자 신숙주’의 면모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한국어문교육학회는 2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중구 대우빌딩 8층 학술재단 세미나실에서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 한영국 인하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신숙주 기념 학술대회를 갖는다.

임형택 교수는 문학가로서의 신숙주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임교수는 “조선시대에 가장 국력이 융성했던 15세기에 사대부 문명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문인 엘리트로 신숙주를 꼽지 않을 수 없다”며 “신숙주를 위시한 문인 지식층에 의해 조선은 비로소 스스로의 문명 의식을 현실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음운학자로서의 신숙주를 조명한 강신항 명예교수는 “신숙주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가장 뛰어난 어학자”라고 평가하며 “신숙주가 중국음운학과 한어(漢語)에 대한 소양이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과업들을 수행한 것으로 보아 1439년 문과에 합격하기 이전, 또는 1440년부터 41년 사이에 중국음운학을 전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한글학회와 고령 신씨 대종회는 서울대 이현희 교수 등이 참여해 21일 ‘보한재 신숙주선생의 역사적 재조명’이라는 학술대회를 가졌고, 국립국어연구원이 발간하는 ‘새국어생활’ 가을호는 신숙주의 학문과 인간을 주제로 특집을 마련해 그의 업적을 재정리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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