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그가 보내 온 책과 도록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사들의 줄줄이 추천사가 없었다면 그를 만나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주 마곡사 인근에 산다는 그에게 어렵게 연락이 됐다. 마침, 서울 올 일이 있다고 해서 만남이 이뤄졌다.
그는 최근 책 한 권을 펴냈는데 ‘화인 허유-가짜라고 묻는 자네는 진짜인가’(솔·학)이다. 직접 그린 50여점의 작품이 실린 에세이다.
-책이 명상집같기고 하고 화집같기도 한데….
“나는 산 속에 사는 철부지다. 자아 도취에 빠져 긴 늪에서 헤매이기도 하고, 냉혹한 현실 사회 벽을 넘지 못해 망연자실할 때도 간혹 있다. 나는 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망령됨으로 헛 인생을 어렵게 살고 있다. 꿈 속에서 빈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워낙 모자라다 보니 여기서 채이고 저기서 짓밟힌다.”
선문답 같다.
허화백의 이같은 언어와 시 서 화를 아우르는 작품세계는 젊은 시절 겪었던 좌절을 극복해 온 의지의 산물이다. 본명은 허승욱(承旭). 1948년 전북 남원생으로 지리산 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군에 입대했다 뜻하지 않게 오른 쪽 팔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큰 아버지 남당(南堂) 허만영(許萬榮) 밑에서 서예와 한학을 익혔던 그는 팔을 다치고 엄청난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세상을 다 먹어 버려도 성에 안 찰 듯 해 입산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나? 맨 날 그 생각 뿐이었다. 어렸을 때 익혔던 붓을 잡은 게 그즈음. 붓을 왼손 주먹으로 쥐고 새벽부터 일어나 고금의 서법을 익혔다. 원래 기가 센 사람인데 성정을 죽이는 일에는 산과 붓이 최고였다.
“세상사를 놓아 버리고 망연자실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산에서 깨달았다. 나는 자연 속에서 그림으로 수행을 한 셈이다. 붓을 잡은 지 어언 30년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림이 그림답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는 붕 떠서 사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면 흰 캔버스를 잘 손질해야 하듯, 내 몸을 꾸미는 데에도 나의 본 바탕인 내 마음을 수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며 “그림은 자기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끊임없는 수양 끝에 얻어지고 번뜩이는 영감에서 얻어지는 산물이 바로 그림”이라고 말했다.
허화백은 서른 둘 늦은 나이에 국비장학생으로 대만 국립사범대 미술학과에 입학, 7년간 유학했다. 반정 정범진 (泮丁 丁範鎭) 전 성균관대 총장은 그의 책에 실린 추천사를 통해 “허화백은 지금 천진(天眞)을 추구하고 있다. 그림, 한시, 언어, 행동, 인성으로 열심히 말이다. 모르는 듯 하면서 크게 알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사회의 천부지(千夫指)를 일소에 붙이고 오로지 자기만이 애써 가꾼 화단(畵壇)에서 사색의 방향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그린 ‘황국(黃菊)’이나 ‘묵죽(墨竹)’을 보면, 고졸함과 당당함, 수줍음과 꼿꼿함이 두루 나타나 있다. 거칠고 성긴 외모와는 또 다른 그를 보는 듯 하다.
30일부터 11월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일곱 번째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02-399-1749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