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지’라는 고서를 뒤척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이 책을 편찬한 제주목사 이원진(1594년∼?). 어디서였더라. 탐독 중 ‘대정 현’부분에 이르러 생각이 났다. 맞다, 하멜 표류기. 1653년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난파한 동인도회사(네덜란드) 소속 범선 스페르베르호를 탈출, 대정 해안에 상륙한 하멜 일행 38명을 도성으로 압송했던 그 제주목사다.
지난 주 파란 하늘이 눈부시던 날. 하멜이 목숨을 건진 용머리해안을 찾았다. 그 위 언덕에는 하멜의 상륙을 기념하는 비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허다한 해안 가운데서도 하필이면 제주도였을까.
의문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찾게된 또 하나의 사실. 조선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서양인 빙라이(1582년·선조 15년) 역시 표류하다 제주도에 상륙했다. 하멜 일행의 통역을 맡았던 세 번째인 서양인 벨테프레(한국이름 박연·1627년·인조 4년)의 상륙지는 남해안. 네 번째가 된 하멜 일행까지 보면 일본행 선박은 난파 시 제주도에 표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저런 궁금증을 안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모슬포 항(1종항)에 닿았다. 물살 세고 바람 세기로 제주도에서도 알아준다는 이 곳. 그래서 ‘모슬포 몽생이’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몽생이’란 ‘억척’이다. 왼편에 가파도, 오른 편에 마라도와 지척간인 이 곳. 돈은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말아도) 좋다는 우스갯말의 현장이다. 수협 공판장에는 어른 팔뚝만한 고등어와 반짝이는 은빛 옷 입은 갈치가 상자에 담겨 있었다.
가파도 마라도 행 여객선이 뜨는 닿는 모슬포. 두 섬 사이는 고기 잘 잡히기로 이름난낚시 포인트다. 그리고 계절은 가을. 몸매 늘씬한 방어가 지천으로 깔릴 때다. 이 가을에 모슬포에 왔다면 방어낚시는 필수다.
낚시 포인트인 섬 사이 바다까지는 배로 20분 거리. “물린 낚싯줄을 당기면 방어는 물 속 바위로 돌진해 줄을 끊어 버리니까 즉시 당겨야 합니다.” 낚싯배 경력 35년의 2002호 선장 김홍율씨(50)가 채비를 차려 주며 알려준 요령.
김씨는 싱싱한 남극해산 크릴새우를 배 밑 구멍을 통해 물살에 흘려 보내며 고기를 유인했다. 20분 후. 물살에 흘려둔 낚싯줄 풀리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뭔가 문 것이다. 전동 릴을 고속 회전시켜 감아 올린 첫 작품. 인디언핑크 빛깔의 참돔(1㎏)이었다.
이날 최대 ‘사건’은 2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다른 낚싯배에서 터졌다. 1m 길이에 16㎏쯤 되는 대형 방어가 잡힌 것. 기자에게도 어신(魚信)이 왔다. 낚싯대가 부러질 듯 당겼다가 풀어 주며 릴 감기를 십여 차례. 2㎏짜리 참돔을 낚았다. 그 묵직한 손 맛. 일단 한 번만이라도 느껴 보았다면 평생 잊기 어려울 만큼 짜릿하다.
대정유어선민박촌(대표 김홍율)에서 체험낚씨를 즐길 수 있다. 064-794-8263, 011-696-7898
제주 모슬포〓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방어축제의 백미는 체험낚시
11월 1∼3일 모슬포항. 최남단 풍어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 지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체험 낚시. 홈페이지는 www.jejubangeo.com.ne.kr
△선상 릴낚시대회〓2일 오전 6시∼오후 4시 마라도 근해. 팀(1척에 3명)당 출전료 30만원. 29일 접수(064-794-1032). 낚싯대는 물론 미끼 등 채비 일체 제공. 잡은 고기는 냉동포장 택배 서비스. 1등 상금 60만원.
△코생이도 좋고 어랭이도 좋고〓2, 3일 낮 1∼5시 모슬포 근해. 방파제 낚시.
△방어 손으로 잡기〓2, 3일 오후 2∼5시 모슬포항
△가두리 방어 낚시대회〓3일 오후 1∼3시.
●식후경
일본 취재 중 홋카이도에서 껍질 익힌 도미 회를 맛본 적이 있다. 포를 뜬 뒤 껍질을 떠내지 않고 껍질부위만 살짝 불에 익혀 회를 뜨는데 말랑말랑한 도미껍질에서 배어 나온 고소함으로 회 맛이 특별했던 기억이 난다. 모슬포항 부근의 ‘동명활어초밥’식당(주인 김춘명·대정읍 하모리)에서 오랜만에 그 맛을 다시 보았다.
껍질 굽는 비결을 물었으나 ‘노 코멘트’. 백견이 불여일식(百見不如一食)이니 제주 섬에 갔다면 한 번 들러보자. 감자와 무를 넣고 간장양념으로 푹 졸인 도미 찜도 별미. 주인 김씨 역시 낚싯배 주인. 생선이 아무리 팔팔해도 잡힌 지 1주일이면 무조건 수족관에서 퇴출시킨다고. 횟감은 자연산만 쓴다고 했다. 064-794-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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