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링크'

  • 입력 2002년 10월 25일 18시 03분


□링크/알버트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김기훈 옮김/424쪽 1만6000원/동아시아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한 부분이리라’

영국의 시인 존 던은 자신의 기도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대륙의 한 조각으로서 서로 이어져 있으며, 따라서 어떤 이의 죽음은 곧 나의 감소를 의미한다고 읊조렸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안의 한 점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현대과학자들은 300년 전 한 시인이 깨달았던 평범한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자연을 쪼개고 분해해 구성요소들을 나열해 놓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것을 어떻게 다시 결합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복잡성의 과학’은 환원주의자들이 흩뜨려놓은 퍼즐을 맞춤으로써 전체적인 틀 안에서 자연을 이해하려는 첫 본격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말 화려하게 부활한 네트워크 과학은 ‘복잡성 과학의 정수’라 할 수 있으며, 그 이론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네트워크 전문가가 쓴 친절한 입문서가 발빠르게 번역·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노트르담 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알버트 바라바시 박사는 이 책에서 이 분야 최전선에 서 있는 학자답게, 단 한 줄의 수식도 없이 풍부한 예제와 다양한 비유로 최근 5년간 과학계를 뜨겁게 달군 핫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네트워크 과학자들에겐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처럼 보인다. 인간관계로 얽힌 사회도 그렇고, 월드와이드웹도, 도시간 비행기 노선편도 그렇다.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점들간에 선은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네트워크의 모양이나 구조를 지배하는 법칙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다.

저자는 인터넷, 세포 내 화학반응 네트워크, 항공 노선편 등 실제 네트워크를 분석해 공통적인 속성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주변의 점들과 비정상적으로 많이 링크된 점’(허브·Hub)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내 항공편을 보면 뉴욕을 지나는 노선이 다른 도시에 비해 월등히 많은데, 이 경우 뉴욕이 허브가 된다. 인터넷에선 야후나 다움 같은 인기 사이트가 이에 해당된다.

네트워크 과학은 인터넷이 ‘공평하고 민주적’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소수의 사이트가 링크를 독점하는 빈익빈부익부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또 9.11 테러가 왜 미국내 항공편의 허브인 뉴욕에서 일어났는지도 짐작케 해주며, 병원균의 생체 네트워크의 허브를 공격하는 신약을 개발하면 효과적일 거라고 말해준다. 야후사이트를 다운시키면 수십만 명의 네티즌들이 곤란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게놈 지도가 완성된 후 많은 사람들은 생명현상에 관한 설계도를 얻은 것처럼 기뻐했지만, 네트워크 과학자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게 유전적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세포의 다른 구성성분들과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전자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게놈지도는 건물만 잔뜩 표시되어 있을 뿐, 건물 사이를 오가는 도로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지도로 어떻게 여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경제학, 컴퓨터 공학, 사회학 등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다른 과학번역서가 주지 못하는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책에서 한국과학자의 이름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라바시 교수와 함께 네트워크 과학을 꽃피우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KAIST 정하웅 교수의 이름이 각 장마다 자주 등장한다.

언제나 그렇듯, 물리학자들의 꿈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복잡한 현상들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을 ‘만유인력의 법칙’ 하나로 멋지게 설명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네트워크 과학은 생명체, 인터넷, 경제 네트워크, 인간 사회 등을 근사하게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문제에 관해 우리에게 유용한 판단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정 재 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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