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의 ‘길의 문화’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39년 대사풍(大砂風)의 피해로 경작지를 잃은 오클라호마의 농민 조드 일가가 캘리포니아의 비옥한 토지를 찾아 이주한 여정을 그린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일 것이다. 요즘 캘리포니아 일대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스타인벡 (1902∼1968)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분노의 포도’ 다시 읽기 운동이 한창이다.
이 문화운동의 하나로 로스앤젤레스의 미술관 게티 센터에서는 최근 ‘분노의 포도: 호레이스 브리스톨의 캘리포니아 사진전’과 ‘삶에 관하여: 도로테아 랭 사진전’이 동시에 시작됐다.
11월말까지 전시될 브리스톨의 사진작품들은 1937∼1938년 그가 스타인벡과 함께 캘리포니아 일대를 여행하며 촬영한 것. 두 사람은 오클라호마의 대사풍을 피해 캘리포니아로 피난 온 난민들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들이 공유한 경험을 각각 같은 제목의 사진 연작과 소설로 옮겼다.
두 사진작가와 소설가의 작업은 1939년 스타인벡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존 포드 감독의 영화 ‘분노의 포도’에서 융합됐다. 브리스톨의 사진들은 존 포드 감독이 캐스팅을 하고 의상과 세트를 고를 때 밑그림이 됐다. 브리스톨의 대표작 ‘피난 캠프의 노동자’는 영화에서 헨리 폰다가 연기한 주인공 톰 조드의 실제 모델이다. 브리스톨은 주제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사진에서 배제하기 위해 카메라 지지대와 인공 조명을 쓰지 않고 자연광에 의존해 핸드헬드 카메라로 모든 사진들을 촬영했다.
브리스톨의 사진들과 함께 전시가 시작된 사진작가 도로테아 랭은 널리 알려진 몇 안되는 여성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 화가로 치면 프리다 칼로에 곧잘 비견되는 그는, 30년대 대공황기 실업자들과 캘리포니아 이주민들의 곤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길거리를 작업장으로 삼았다.
랭의 대표작 ‘난민 어머니’의 주인공은 랭이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서 마주친 서른두살의 여성. 양성적인 얼굴 윤곽과 철학적 자세, 착 들러붙은 아이들의 포즈만으로도 혼자서 거친 노동을 감내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이의 고단함과 막막한 삶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두 기획 사진전의 모태가 된 ‘분노의 포도’ 다시 읽기 운동은 캘리포니아 주립도서관의 주도로 올해 초 시작됐다. 캘리포니아 전역의 146개 도서관들과 미술관, 커뮤니티 센터 등이 참여해 다양한 공연, 전시, 독서 토론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확산된 9·11 테러 이후 통합을 위한 시도의 하나이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