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종교와 정치-종교적 갈등과 인정 투쟁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강의한다.》
1931년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얼에서 태어난 테일러 교수는 5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헤겔 철학을 영미권에 소개한 저서 ‘헤겔’로 명성을 얻었다.
61년 이후 캐나다 몬트리얼의 맥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캐다나 신민주당(NDP)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76∼79년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그 이후 맥길대 교수로 돌아와 퀘벡주 분리운동을 둘러싼 캐나다의 국가위기 수습에 앞장서기도 했다.
테일러 교수는 29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헤겔 철학의 ‘인정(Anerkennung·認定)’개념을 빌려 “자아의 존엄성은 타자의 인정으로부터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현대사회에서 개인들의 원자화가 정치적으로 시민운동을 위축시키고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말을 빌면 ‘부드러운 전제정치(Soft Depotism)’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은 시민운동이 오히려 활발한 것 같다.
“미국 사회을 유지해온 강력한 유대성이나 국가를 위한 헌신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부시와 고어 사이에 뜨거운 쟁점이 있었는데도 투표율은 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투표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부시가 되느냐 고어가 되느냐에 따라 지금처럼 엄청난 차이가 초래될 수 있었는데도 그렇다. 그러나 이를 보완하는 반작용도 함께 일어났다. 소비자운동같은 탈사사화(脫私事化·Deprivatization)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다. 두가지 흐름은 일면적이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9·11 테러 이후에 미국 사회는 개인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집단주의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얼핏보면 성조기가 동나게 팔리는 등 개인주의의 파편화 현상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표피적인 측면과는 달리 심층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제분야에서 대기업의 구조조정 등은 계속 파편화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상황은 이런 흐름이 갑작스러운 애국심의 발현과 공존하고 있는 흥미로운 경우라고 생각한다.”
-서구와 이슬람 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공존에 낙관적이다. 헌팅턴의 ‘문화충돌론’은 일면적이고 피상적이다. 자유주의화된 서구인이건 이슬람교도건 인간은 누구나 의미지향적인 존재다. 이슬람인들이 어떤 이슬람속에서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알 카에다와 같은 근본주의만이 이슬람이 아니다. 다양한 이슬람 재해석운동이 있다. 터키 이집트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개혁적인 이슬람운동은 인간적이고 보편적이다. 또 타민족 증오에 반대한다. 서구의 경우에도 이슬람적 정체성의 존엄성과 가치를 열린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긴장을 조장하고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보는가.
“북한 정권의 행태가 기괴하고 보편적 합리성에 안맞는다. 그러나 미국의 장기적 이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부시는 자기파괴적인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은 지금 군사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다. 군사력이 전부가 아니다. 동맹국들 사이의 연대의식, ‘인정’의 정치를 구사할 수 있는 여유, 다문화주의적인 통찰이 물리력에만 의존하지 않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구성한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소프트 파워를 내던져버리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행정부내에서도 파월 국무장관같은 온건파가 있다. 반전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