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는 정기적으로 정부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모든 신문은 매일 보도할 기사와 보도하지 않아야 할 기사에 대해 지시를 받았으며 심지어 기사와 사진의 위치도 통제를 받았던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의 구속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에 이 상황을 알렸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패널로 참석한 이화여대 이재경(李載景·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가 “당시 탄압받던 신문이 무슨 신문이며 프리덤하우스는 어떤 도움을 줬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서스만 위원은 “동아일보와 그 사주였던 고(故) 일민 김상만(一民 金相万) 선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서스만 위원은 70년대 초 박정희 정권 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총회에서 일민 선생을 처음 만나 한국 언론이 정부로부터 받는 탄압을 전해 들었다.
74∼75년 동아일보가 언론사상 유례 없는 광고 탄압을 받자 프리덤하우스는 일민 선생이 구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지원에 나섰다. 프리덤하우스는 74년 동아일보에 대해 ‘자유언론상’을 수여한 데 이어 75년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가 주는 ‘언론 자유의 황금펜상’ 수상자로 일민 선생을 추천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언론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일민 선생은 7년 뒤인 82년에야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서스만 위원은 “일민 선생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우리 부부를 한국으로 초청해 당시 국제사회의 노력이 한국의 언론과 동아일보를 지켜주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서스만 위원은 “작년에 일민 선생의 아들인 김병관(金炳琯)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이 정부에 의해 구속되는 것을 보고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신선한 공기를 한 번 들이마신다고 해서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듯이 언론의 자유도 국민의 일상에서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언론의 힘 덕분이었다”며 “그런데 그 언론이 김대중 정부의 단속과 탄압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언론자유라는 DNA’가 들어있는 것으로 확신한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에 대한 언론의 견제 기능이 저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