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씨가 자전적인 이야기에 노래와 춤을 섞어 ‘드라마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꽃밭에서’. 사진제공 정미소
윤.석.화. 이름 석자 만으로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여배우. 어깨를 드러낸, 레드 와인 빛깔의 드레스에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귀에 꼽은 윤석화는 ‘제비꽃’으로 무대를 시작했다. ‘제비꽃’은 가수 조동진씨가 1985년 당시 한창 힘든 시절을 보내던 윤석화를 격려하기 위해 가사를 썼다는 곡.
숨죽이고 노래를 듣던 관객들은 노래가 끝난 뒤에도 조용했다. 윤석화가 웃으며 “박수, 치셔도 됩니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웃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10월의 마지막 밤, 대학로 정미소 소극장. 지난달 10일부터 윤석화가 자전적 이야기에 음악을 섞어 펼치는 ‘꽃밭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는 곳이다. 아직 완공되지 않아 철근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는 160석 규모의 이 소극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인지 중장년층의 주부 관객이 절반을 넘는다. 남편과 함께 온 중년 부부도 10여쌍 가량 눈에 띄었다.
“1남6녀 중 막내, 게다가 바로 위의 형제가 ‘문제의 1남’인 탓에 어린 시절 미미한 존재였다”는 윤석화는 유일한 자신의 유년시절 독사진이라는, 꽃밭에서 찍은 다섯 살 때 사진을 소개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보이고자 다섯 살 때부터 부르기 시작한 노래.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 윤석화는 두 손을 가슴께에서 맞잡고 깜찍한 목소리로 동요도 불렀다.
“어느새 4학년 7반(47세)”이라는 윤석화는 27년간의 무대 인생과 절망, 그리고 희망의 시간들을 열 한곡의 노래로 풀어놓았다.
엄마가 환갑 기념으로 받은 10돈짜리 쌍가락지를 전당포에 맡겨야 했던 사연,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도중 하차하면서 배우로서 입은 상처와 좌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업실패로 해외 체류중인 남편(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과 연애시절 즐겨 불렀다는 ‘내가 아는 한가지’를 끝내고는 “오늘 따라 남편이 유난히 그립다”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는 춤, 노래, 재담 등 윤석화의 ‘개인기’가 한껏 펼쳐진다. 전통적인 연극 무대와는 전혀 다른, 개인 콘서트나 토크쇼에 가깝지만, 윤석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눈물과 함께 그녀가 살짝살짝 들춰내는 과거를 공유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한 50대 중년 주부는 “예쁘고 화려해만 보이는 성공한 여배우가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위안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22일까지. 3만원, 5만원. 02-3673-2054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