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⑩]"당장 나가!"

  • 입력 2002년 11월 4일 18시 02분


어떤 사내의 아내가 집을 팔아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한데 남편이 뒤늦게 이를 알고는 아내에게 소리쳤다.

“이것아! 살던 집을 이문을 남기곤 남에게 팔다니! 당장 집을 나가라!”

요즘의 세태며 민심이라면 이건 말도 안 된다.

아내는 웃음을 참다못해 배를 안고 뒹굴 것이다.

아예, 헛소리거나 미친 소리다. 남들의 비웃음 사기 딱 알맞다. 헛배가 부르다 못해, 입으로 내갈긴 방귀 소리쯤으로 들릴 것이다.

한데 이건 정말이다. 고려 시대에 있었던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가 미쳤구나!”

요즘이라면 적잖은 사람이 이렇게 코웃음을 칠 테지만, 이건 실화다.

주인공 이름은 노극청이라고 했다. 고려의 명유(名儒), 이 규보 선생이 그의 문집에 실어서 후세에 전한 실전(實傳), 곧 실존한 인물의 전기(傳記)의 일부다.

극청이 출타 중에 아내가 집을 팔았다. 몇 해 전에, 백은(白銀), 아홉 근을 주고 산 것을 열두 근을 받곤 팔았다. 관리이던 극청의 살림 형편이 어려워서 집이나마 팔아서 밥줄을 이어가자고 든 것이다.

한데 남편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다.

집을 산 사람을 찾아갔다. 백은 세 근을 내 놓으면 말했다.

“당신께서 사신 집은 제가 기거한 지가 오랩니다. 낡은 것을 손질, 단 한 번 한 적이 없습니다. 살 때 값보다 더 받을 명분이 없습니다.”

한데 상대도 상당한 인물이었다. 못 받겠다고 버티다가, 그럼, 백은 세 근을 절에 시주나 하자고 나섰다.

두 사람이 엎드려 세 근의 백은(白銀)을 바쳤을 때, 그들 등에 불은(佛恩)이 눈비시게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집은 없고 아파트만 있는 게 세태다. 투기의 대상이면 주거(住居)도 화투짝과 다를 게 없다. 극청의 이야기 듣고 아파트들과 화투패가 얼마나 코웃음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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