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 꽃이 없는 집은 나무와 돌로 이뤄진 ‘집(house)’에 지나지 않으며 꽃이 한 송이라도 놓여 있어야 ‘가정(home)’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 오거스트씨는 50년이 넘게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등을 근거지로 활동한 플로리스트.
그는 “천장이 낮고 방 크기가 작은 한국의 아파트에는 거창한 꽃꽂이보다 단순한 꽃장식이 어울린다”고 조언했다. 키가 큰 꽃장식이나 꽃다발을 통째로 병에 담는 방법은 좁은 공간을 더욱 답답해 보이게 한다는 것.
또 가구 색깔과 조화를 이루는 꽃장식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오거스트씨는 “가구색이 갈색 계통이면 오렌지, 노랑, 분홍 등 화사한 색이 좋고 흰색이나 검은색의 모던한 가구일 때는 흰색 꽃이 알맞다”고 조언했다. 오거스트씨는 “거리 곳곳에 떨어져 있는 은행잎을 주워와 식탁 유리 밑에 흩뿌려 놓고 그 위에 와인병과 잔을 올려놓기만 해도 훌륭한 장식이 된다”고 강조했다.글〓금동근기자 gold@donga.com 사진〓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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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정겹게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데 지장이 없도록 낮게 장식을 하는 게 포인트. 오거스트씨는 “꽃도 좋지만 식탁인 만큼 과일, 야채 등의 재료를 활용하는 것도 잘 어울린다”고 조언했다. 그가 선보인 꽃장식에는 사과 감 고추 등이 놓인다. 유의해야 할 점은 동그란 모양의 과일과 길쭉한 모양의 고추가 군데군데 적당히 어울리도록 하는 것. “무거운 느낌과 가벼운 느낌의 조화”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재료들을 식탁의 가로 길이에 맞춰 늘어뜨리는 게 중요하다. 이끼로 장식의 양 옆을 추가로 장식하는 것도 아이디어. 식탁의 색깔이 짙은 갈색이면 무거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재료는 밝은 색 위주로 준비해야 한다. 나지막한 장식의 한 쪽에 뾰족한 촛불 하나를 켜두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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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아담하게
‘아늑하게 보이기(cozy look)’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봉오리가 큰 꽃은 피하는 게 좋다. 오거스트씨는 계절에 맞춰 따뜻한 느낌이 나도록 봉오리가 작은 노란 해바라기와 진홍색 들국화, 푸른 나뭇잎으로 만든 꽃장식을 추천했다. 전체적으로 동그란 모양. 꽃병도 공 모양의 유리병을 이용해 아기자기한 느낌을 강조했다. 그는 “해바라기와 들국화를 몇 송이씩 그룹으로 묶어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욕실-산뜻하게
욕실에는 거울 앞에 한 송이만 놓아 본다. 거울에 반사되는 것까지 더해져 산뜻한 느낌이 든다. 여러 송이가 있으면 오히려 번잡하다. 오거스트씨는 “아침에 욕실에서 꽃을 보면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 송이만 꽂기에 적당한 꽃으로 흰 꽃이 핀 호접란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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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운치 있게
오거스트씨가 “절대 장식이 크면 안 된다”고 거듭해서 강조한 공간. 여러 종류의 꽃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 않으며 지나치게 많은 꽃송이도 금물이다. ‘여유’를 연출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 그는 “특히 꽃병의 종류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유리병이 가장 적당하다”고 추천했다. 유리병에 서너 송이의 꽃을 담으면 투명함이 살아나므로 공간을 가로막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유리병 자체가 방을 넓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 꽃은 장미 한 종류만 선택했다. 서너송이밖에 없어 단조로워질 수 있는데 이때는 꽃의 길이를 서로 다르게 하는 방법으로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스타들의 플로리스트 다니엘 피숑 “이게 니콜 키드먼의 칸 부케”▼
프랑스의 유명 플로리스트 다니엘 피숑(52·사진)이 액세서리 브랜드 ‘루이 까또즈’의 서울 청담동 매장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이벤트 꽃 데커레이션을 위해 최근 서울을 찾았다. 피숑씨는 파리의 고급 플라워 부티크 ‘라숑’의 디자이너 출신으로 권위있는 꽃다발 디자인상인 ‘황금 에르메스상’ 등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현재 프랑스 칸에 살며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그의 고객은 연예계의 유명 인사와 부호들. 8월에는 칸의 엘튼 존 별장 플라워 데커레이션을 했다.
연중 그가 가장 바쁜 때는 칸영화제 기간이다. 피숑씨는 “스타들이 꽃다발 주문을 하면 그들의 눈동자, 머리카락, 피부색, 최근 작품, 자주 입는 드레스, 성격 등을 총체적으로 떠올려 컨셉트를 잡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개막 작품으로 선정된 ‘물랑루즈’의 주인공 니콜 키드먼의 ‘칸 부케’도 이렇게 탄생했다.
“주문을 받고 먼저 유난히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 다음엔 금색과 빨간색이 섞인 머리색이 생각났고요.”
키드먼의 꽃다발은 눈같이 흰 아이스버르그 장미에 약간의 오렌지색이 섞인 베이지색 장미, 스위트 허니 100송이를 둥그렇게 엮어 전체적으로 표면이 반원처럼 보이게 하는 스타일이다. 장미 줄기를 50㎝ 이상 길게 남겨두고 눈대중으로 길이를 반으로 나눈 뒤 위쪽은 잎을 남겨두고 아래쪽은 모두 떼낸다. 꽃송이 한 대를 기준으로 삼아 나머지 꽃들을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배치한다.
풍성한 꽃다발 위에 다이아몬드형 구슬도 얹는다. 수십개의 구슬에 구멍을 뚫어 각각 가늘고 투명한 낚싯줄에 통과시킨 뒤 꽃송이 위에 그물처럼 쳐 놓은 형태. 키드먼이 영화 속에서 부른 ‘다이아몬드는 여자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Diamond is girl’s best friend)’라는 노래를 생각했다. 꽃다발의 아랫부분에는 흰색 공단을 길게 늘어뜨려 마치 꽃다발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듯한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의 또 다른 주요 고객인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는 꽃잎이 두꺼운 흰색 작약과 보라색 난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연출법은 작약 300송이를 키드먼의 꽃다발처럼 둥그렇게 묶거나 여러 송이의 난을 비대칭으로 꽂아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서로 절친한 친구인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이브 생 로랑’이라는 이름의 진분홍색 장미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확인한다. 이들 역시 조잡한 꽃장식보다는 수십에서 수백개의 꽃 자체를 크고 둥근 모양으로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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