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책]"보수-진보 논쟁 잿밥에 더 관심"

  • 입력 2002년 11월 7일 18시 20분


강원 춘천 한림대 민족통합연구소(소장 김인영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일 한림대 사회과학관에서 ‘민족갈등과 민족통합’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이날 발표자중 박효종(朴孝鍾·55)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는 미리 배포된 논문 ‘민주화 이후의 보수와 진보 갈등’을 통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보수 진보 논쟁에서 양측이 권력지향적이고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진보측은 ‘색깔론’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좌파’라는 말은 쓰지 말자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권력을 잡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는 지배욕(libido dominandi)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때만 되면 보수측이 저급한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행태도 문제지만 진보측이 이념 논쟁을 하지 말자고 역설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햇볕정책과 관련, “우리의 남북연합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데도 단순히 6·15 공동선언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통일세력으로 낙인찍히고 찬성하면 통일세력으로 간주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부실을 보여주는 전형”이라며 “이는 이념논쟁을 토론과 설득보다 정치적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시도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박교수는 또 보수 진보간 논쟁의 쟁점중 하나였던 ‘친일’논쟁과 관련해 단순한 친일 개념 적용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일단 “왜 반일(反日) 민족주의만 있고 용일(用日)민족주의는 없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뒤 “일제 강점기는 장기간이었던데다 어느 나라의 식민지 경험보다 가혹했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조선인이 친일을 했다면 매국적인 행위라기보다 하나의 생존방식(modus vivendi)로 볼 여지가 있고 또 친일은 민족생존을 위한 민족학교나 민족신문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는 보수쪽의 주장에도 귀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쪽에서는 일본과 미국에 반대하는데 치중하고 ‘무엇을 향해 진보해야 하는가’라는 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반면 보수쪽에서는 북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데 치중하고 있어 ‘무엇을 보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며 “진보가 반미주의에서 정체성을 찾고 보수가 반공주의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결손의 정체성(identity of deficiency)일지언정 풍요의 정체성(identity of sufficiency)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결론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논쟁이 ‘네거티브(negative)’가 아닌 ‘포지티브(positive)’담론으로 전환하고 ‘마키아벨리적 권력게임’이 아닌 ‘하버마스적 대화상황’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가톨릭대 신학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가와 권위’(박영사·2001년)란 저서로 작년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이날 세미나에는 박교수외에도 심지연(沈之淵)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논문 ‘해방이후 좌우 갈등의 원인과 해소노력:현재의 함의를 중심으로’를, 김영명(金永明)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제2공화국 하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발표한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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