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는 신간 ‘화(Anger)’도 포함해서 스님 저술이 줄지어 번역되고 있다. 그의 독자가 우리 주변에 많다는 말이겠다. 불교 설법이라기보다 참사람이 될 수 있는 손쉬운 행동요령을 적고 있음이 매력으로 작용했지 싶다. 화가 날 때 잠시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면 그걸 삭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식이다.
책과 함께 간곡한 격려의 편지도 보내왔다. “암을 적으로 삼지 말고 먼길을 동행하는 벗처럼 삼아, 병환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면서 그와 대화하며 배우는 마음의 자세가 좋을 듯하다. 와중(臥中)에서도 명상에 힘쓰고 중국의 스님 운문(雲門)이 말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집안에서 존경받는 어른의 타이름은 전 서울대 병원장이 저술한 암 투병 체험담(한만청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과 꼭 닮았다. 그리고 인용한 “하루하루가 가장 좋은 날”이란 고승의 말씀은 “하루를 평생으로 여긴다면 삶은 충실 그 자체”라는 덕담이라 이 또한 진선진미의 좌우명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정부통계는 한국인의 사망원인 넷 중 하나가 암이라 한다. 암이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암이 ‘죽음의 병’이라 알려져 있는 만큼 당사자의 절망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그걸 지켜보는 가족의 고통도 고문이 따로 없다.
자연히 당사자와 가족들의 투병 노력은 필사적이다. 현대의학도 암에 대해 모르는 바가 너무 많은 탓에 항암에 좋다는 것을 찾아 백방의 노력을 기울인다. 기적의 영약(靈藥)이 있을 것이라며 대체의학용 민방(民方)을 찾는 열기가 뜨거운 것도 그 때문이다.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대형 서점에 가면 대부분이 ‘행복 늘리기’ 책이고 일부가 ‘불행 줄이기’ 책이겠는데, 후자에는 영약이 있다고 장담하는 책이 적잖다.
암환자를 둔 모든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의 와병에 나도 안절부절못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와중에서 국내외 양의(良醫)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 조언들은 삶의 지혜도 담고 있기에 그걸 정리하면 혹시 참고할 사람이 있을 법하다.
무엇보다 생존율이 낮다 해도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암이 발병하면 ‘5년 생존율’이란 말을 먼저 듣는다. 아내의 병이 재발하자 그게 5%라 했다. 그런데 생존율이란 의료계에서 파악한 평균치일 뿐이다. 비록 5%일지라도 그 안에 들 수만 있다면 개인 환자는 100% 생존율을 실현하는 셈이다. 비관적 생존율에 당면해서도 불굴의 투병의지가 절대필수라는 말이다.
둘째는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2차 소견’(Second Opinion)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진단과 치료에서 한 전문의의 소견이 최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암세포의 척추 전이를 보여주는 진단 영상은 과격한 운동에 따른 골절(骨折) 때의 영상과 구별하기 어렵다 한다. 우리 의료관행상 2차 소견을 듣기는 쉽지 않다. 어렵지만 찾아보면 길은 있다.
셋째, 암치료 방법 중에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항암제 사용. 구토, 탈모 등 그 부작용을 미리 직·간접으로 듣기 때문에 환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선택이 가능하다면 환자의 심정은 항암제 대신 덜 고통스러운 방사선 치료 등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상황에선 넘칠 정도로 적극적인 대처가 삶의 이치다. 이를테면 고준위 핵폐기물은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야 무해(無害)한 것으로 바뀔지 확신이 없어 깊은 바다에 버릴 때도 금속, 유리, 콘크리트 등으로 겹겹이 싸고 또 싼다. 바닷물에 마모되지 않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내 가족의 체험에서 얻은 교훈이 어쩌면 항암효과가 좀 있다는 약재로 모든 암을 고칠 수 있다고 떠벌리는 선무당의 소견일 수 있다. 하지만 암환자를 지켜본 가족도 발언권은 있지 않겠나 싶어 적어 본 것이다.
김형국 서울대교수·도시계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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