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둥그배미야/김용택 글 신혜원 그림/100쪽 8500원 푸른숲(초등 전학년)
‘김용택 선생님이 들려주는 논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을 보고 오해했다. ‘벼는 이렇게 생겼고, 농사는 저렇게 지으니, 너희는 오로지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먹으렴’이라고 아이들에게 낯선 지식과 반성을 강요하는 섣부른 지식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이 책은 ‘농사꾼 김용택이 들려주는 사람 이야기’였다. 농사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사람과 땅이 사귀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농사꾼은 땅과 연애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땅은 사용해야 하는 도구가 아니고 늘 보살펴야하는 상대방이다. 상대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맘 써줘야 하고, 쉴 시간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땅과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엉터리로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닌’ 그런 것이다.
글쓴이는 지금 우리가 땅과 사귀는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천천히 기다려 주지 않고 기계와 농약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땅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귀는 방법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대를 그리워하면서 알려 하지는 않고, 말 걸고 싶어지면 지배 먼저 하려 해서 멀리 떠나가게 하고. 그래서 이 책은 땅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여러 식물에 대해 정성스레 우리에게 알려준다. 느낌과 냄새와 훈김을 함께 느끼기를 바라는 듯이.
이런 농사꾼의 마음을 우리에게 더 잘 전해주는 것은 신혜원의 그림이다. 진메 마을을 수없이 다니며 그렸다는 그림은 꼼꼼하고 따뜻하다.
4면을 넓게 펼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 안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기분이다. 특히 만화로 처리된 그림들은 왁자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더 신난다. 그 중에서 제일 따뜻한 그림은 모내기를 끝내고 노심초사하는 봉숙이 아버지 모습이다. 밥을 먹어도, 화장실에서도, 잠을 자도 온통 논 생각뿐이다. 그리고 다음 장, 논둑에 나와 앉아 얼굴 가득히 머금은 웃음. 봉숙이 아버지뿐 아니라 각자 자기 논을 바라보며 웃음짓는 모든 사람들. 넉넉하다.
책 사이사이에 ‘들여다보기’로 농사에 대한 간단한 상식도 알려주고, 논 언저리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들도 세밀화로 잘 소개해 놓았다.특히, 책의 앞 뒷면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그림을 읽으면 책 만들던 과정이 보여서 더 재미있다.
김혜원 주부·서울 강남구 일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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