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인기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 국내 처음으로 그의 개인전이 15일∼내년 2월23일까지 일민미술관(02-2020-2062)에서 열린다. 제목은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 전시장 일부 구역은 미성년자 출입 제한 조치를 취한다.
그가 포착한 서울과 도쿄는 낯익다. 지하철, 노래방, 음식점, 시장통, 젖은 뒷골목…. 평이한 구도와 원근법은 ‘아라키’라는 레떼르를 떼면 자동 카메라나 1회용 카메라로 찍은 듯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전시회장을 나오면 이런 생각은 180도 바뀐다. 사진 속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문득, 그의 사진이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사진은 기본적으로 모사(模寫)지만, 기계라는 속성 탓에 사진 속 삶과 실제 삶이 어긋나기 십상이다. 셔터를 눌렀을 때 간직했던 머릿 속 이미지와 나중에 인화된 사진을 보았을 때 느끼는 괴리감. 그것은 ‘렌즈’ 앞에 선 대상의 긴장을 통해 부자연스러움으로 전달된다.
아라키가 포착한 대상들에는 긴장이 없다. 갈비를 자르는 식당 종업원, 열차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는 여고생, 모처럼 외식에 포식한 듯 아이를 들처 업고 퍼질러 앉아 있는 아줌마…. 그들은 작가를 처음 만났음이 분명할텐데 렌즈가 개입한 흔적이 없다. 우리가 맨 눈으로 봐 온 맨 얼굴 그대로다.
아라키는 카메라를 신체의 일부로 만들어 버린 듯 대상과 하나가 되었다. 카메라로 숨을 쉬는 사람같은 그에게는 모든 것이 재료다. 모든 계급, 모든 직업의 사람들이 등장하며 심지어 양변기 쓰레기통 같은 것도 소재가 된다.
그가 포착한 무덤덤한 일상과 무심한 표정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문득 ‘우리를 짓누르는 일상이란 것이 저렇듯 한낱 실없는 농담’ 같다는 난데없는 위안이 든다. 그리고 경계없이 삶과 사람을 대하는 작가의 포용력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런 자유로움은 홍등가 여성들로 보이는 젊은 여자의 나신들을 찍은 컷들에서 절정에 달한다. 홍등가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이다. 온갖 것들이 부유(浮游)하는 그 곳에서 그는 여성의 몸을 통해 욕망의 솔직함,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자유로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전시가 될 때마다 외설 시비를 불러 일으키고 있지만, 실제 사진을 보면 에로틱하기보다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고 누워서, 목욕하면서, 혹은 로프에 칭칭 감겨 렌즈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근육, 얼굴, 눈동자는 편하다. 어떤 것은 몽환적이어서 신비감마저 인다. 수치심이나 부끄러움보다 삶의 모든 것을 놓아버린 체념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아라키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발목잡고 있는 온갖 집착과 편견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 클로즈업해 찍은 ‘꽃’과 ‘음식’도 남녀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들이지만, 역하다기 보다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작가의 가벼운 조롱이 느껴진다.
신작 ‘서울 스토리’는 지난 20년간 서울을 수없이 오가며 변화를 추적해 온 대가의 애정 깊은 시선이 담겨있다. 비빔밥, 갈비찜, 뼈다귀 해장국등 한국 음식을 클로즈업 한 작품도 신선하다.
전시 작품은 모두 500여점으로 폴라로이드 사진 1000여점을 붙여 일본과 한국의 하늘을 재구성한 대작도 등장한다. 30일 오후 3시 ‘아라키와의 대화’를 통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열성 팬이라는 가수 싸이가 나와 축하 공연도 한다. 입장료 4000원.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