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20세기 아이디어 역사의 휴지통으로

  • 입력 2002년 11월 12일 17시 54분


적자생존의 법칙은 사고(思考)에도 적용된다. 20세기 많은 사상과 철학이 명멸했다. 미국의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11·12월호에서 관련 학자와 연구자들에게 의뢰해

20세기를 풍미했으나 21세기의 문턱을 넘지 못한 6가지의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마르크시즘〓마르크시즘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두 계급의 투쟁으로 역사를 분석했다. 결국 수가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이겨 계급 없는 평등사회로 나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전파되던 19세기 유럽에서도 노동자의 생활조건은 향상됐으며 이들은 중산층으로 올라섰다. 가장 결정적인 모순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을 물적토대라고 했지만 공산사회를 지배한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성장의 한계〓1972년 유럽의 경제학자와 과학자, 기업인 등 36명으로 구성된 민간단체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유한한 지구 자원에 비춰 무한한 경제팽창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73년 석유위기와 겹쳐 이 이론은 지식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30년이 지난 지금 고갈됐어야 할 금 은 구리 수은 석유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구 증가로 폭등할 것으로 예상됐던 농산물 가격은 지금 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들은 92년에 ‘한계를 넘어서’라는 속편을 발표하고 1인당 음식 섭취량이 90년대 중반을 고비로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인당 칼로리 섭취량은 94년부터 2000년까지 1일 평균 2719㎉에서 2805㎉로 3% 늘었다. 이들은 기술적 진보와 인간의 적응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상호확증파괴(MAD)〓핵공격에 의한 보복능력을 갖고 있어야 적의 핵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MAD 이론도 냉전 종식과 함께 미국에 견줄 수 있는 초강대국의 소멸로 유효성을 상실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핵무기를 방어용이 아니라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으로 이 이론을 대체했다.

▽군산복합체〓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 대통령이 퇴임연설에서 미국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고 개탄한 군산복합체. 그러나 이 이론도 퇴색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이른바 ‘파월 독트린’은 미국의 군사력 동원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 군사비 증가 추세는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우려했던 상황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구 군수업자에게 더욱 많은 예산을 배정하려는 의원들의 정치적 흥정의 결과다. 또 대부분이 40대 중반에 제대해야 하기 때문에 두 번째 직장을 구하려는 군인들이 군수업자와 유착할 수밖에 없는 요인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70, 80년대 한국과 싱가포르, 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 배경이 유교에 입각한 아시아적 가치라고 주장한 문화이론이 유행했다. 19세기에는 동아시아 낙후성의 이유를 역시 아시아적 가치에서 찾았다. 경제적 근대화에 이어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는 양상은 아시아나 19세기의 유럽과 같다. 막스 베버가 북부 유럽의 경제적 성공을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찾은 것도 같은 오류다. 남부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그 후 경제성장에서 북부유럽을 추월했다.

▽종속이론〓60, 70년대 중남미를 휩쓸었다. 미국과 같은 중심부의 번영은 제3세계와 같은 주변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그 골자. 그래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나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정권과 수많은 게릴라들은 중심부와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20여년간의 논란과 유혈투쟁을 거쳐 결국 자유롭게 선출된 중남미의 대통령들은 무역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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