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스틴 파워:골드멤버’에서 닥터 이블에게 부하가 보고하는 장면)
닥터 이블이 다른 사업에 눈독을 들여 무산되긴 했지만, 부하들의 할리우드 에이전트 사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객을 대리해 계약하고 수수료를 받는 에이전트는 원래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익명의 존재’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에이전트는 ‘양지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1: 에이전트는 힘이 세다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판권 계약부터 작가, 배우, 감독을 모으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윌리엄 모리스, CAA, ICM, UTA 등 할리우드의 에이전트 회사들은 넘쳐나는 이야기거리 중 무엇을 골라 영화화할 것인가에도 힘을 발휘한다. 20세기 폭스가 제작을 거절해 사장될 뻔한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영화화를 성사시킨 것도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전트인 CAA였다.
에이전트들은 치열한 고객확보 경쟁으로 스타 몸값을 높여놓은 ‘주범’이기도 하다. 짐 캐리가 1996년 ‘케이블 가이’에서 20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은 것은 에이전트의 악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2000만 달러 진입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출연료 급상승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 존 트라볼타가 ‘배틀 필드’로 죽을 쒀도 출연료가 떨어지지 않는 것도 막강한 에이전트 윌리엄 모리스 덕분이다.
#2: 전설의 에이전트들
에이전트의 효시는 올해 6월 타계한 전 MCA회장 루 워셔맨. 그는 50년대 초 스타가 출연료 대신 흥행 수익의 일정 비율을 갖는 지분 참여 방식을 도입했고, TV가 도입되었을 때는 스토리와 소속 배우들, 감독 등을 패키지로 묶어 방송사에 파는 방식을 선보였다.
이를 영화 제작에도 끌어들인 사람은 90년대 초반까지 근 10년간 ‘할리우드 파워 1인자’로 군림한 ‘슈퍼 에이전트’ 마이클 오비츠. 그가 설립한 CAA는 한창 때 시장 점유율이 70%를 웃돌았고, 톰 행크스, 케빈 코스트너 등의 고객과 스토리를 묶은 패키지를 영화사에 팔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양산해왔다.
오비츠는 CAA를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 올 여름 새 회사를 빼앗긴 뒤 “할리우드의 ‘게이 마피아’가 나를 망쳤다”는 망언으로 패가망신한 상태. 그의 몰락은 영화사들이 거대기업화하면서, 가족주의로 할리우드를 좌지우지하던 ‘슈퍼 에이전트’의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에이전트의 새 고객들
요즘 에이전트들이 본업인 ‘스타 관리’이상으로 주력하는 새 사업은 엔터테인먼트 매체를 이용한 기업들의 마케팅 컨설팅이다. CAA는 고객인 코카콜라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독점 마케팅 계약을 성사시켰고, 윌리엄 모리스는 고객 이베이(인터넷 경매회사)와 관련한 TV쇼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초 저소득층에게 불합리한 의료보험(HMO)에 분개한 아버지의 인질극을 그린 영화 ‘존 큐’가 개봉된 뒤 미국 건강관리기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윌리엄 모리스에 할리우드 마케팅을 맡긴 것. 조만간 HMO의 장점을 부각시킨 영화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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