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녀공학, 여학생들 자신감 리더십 높아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7시 42분


‘남녀공학이 좋은 이유’에 대해 공학 학생 10명 중 8명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사진은 서울 도봉구 신방학중학교 3학년 학생들로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다./신석교기자
‘남녀공학이 좋은 이유’에 대해 공학 학생 10명 중 8명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사진은 서울 도봉구 신방학중학교 3학년 학생들로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다./신석교기자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주부 K씨는 서울 강북의 C중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C중학교는 수업 분위기가 좋고 학교 폭력도 없어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도 K씨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C중학교가 남녀 공학이 아닌 남학교라는 사실이다.

“요즘엔 여학생들이 워낙 공부를 잘해서 남자 아이들이 내신에서 불리하대요. 여자 아이들이 드세니까 남학생은 주눅이 들어서….”

학부모들은 공학과 단성(單性·single-sex)학교 중 어느쪽이 아이에게 좋을 지 고민이다. 하지만 중고교 과정에서 공학은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전국적으로는 8413개 중학교 중 5298개교, 1969개의 고교 중 1055개교가 공학이다.

남녀를 한 교실에서 가르치기로 한 이유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학교 폭력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다. 학생수가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해 교육 투자의 효율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남녀 공학이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 지에 대해 평가가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 그저 “이성을 의식해 성적이 오른다” “아니다, 이성 교제가 오히려 학업을 방해한다” 는 막연한 주장들만 제기돼 왔을 뿐이다.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성별과 학교 유형에 따른 중학교의 경쟁력을 점검해 보았다. 조사의 목적은 공학과 단성학교 학생들간, 그리고 공학과 단성학교에서의 남학생과 여학생들간의 학업성적과 자아개념, 사회성 등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10월28일∼11월1일 실시된 조사는 서울 한 지역교육청 산하 공학 2개교, 단성 2개교의 중학교 3학년 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했다.A중학교와 B중학교(공학)에서 남녀 학생 200명씩 400명, 남학교인 C중학교와 여학교 D여중에서 각 200명을 추출했다. 조사는 학급별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학교와 학급의 선정 기준은 올 9월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력평가 시험을 치른 학교일 것, 학교간 부모의 소득 및 교육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해당 학교에서 성적이 평균적인 학급일 것 3가지였다.

그러나 같은 지역이라도 사교육 환경 등에 따라 ‘동네’별로 핵분열해 있고 표본도 작기 때문에 오차가 클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이번 조사 결과를 읽을 필요가 있다.

●공학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

어느 집단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방과 후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포함해 하루에 몇 시간을 공부하느냐고 물었다. 보기는 ‘1시간 미만’ ‘1∼2시간 미만’ ‘2∼3시간 미만’ ‘3시간 이상’ 등 모두 4가지. 이 중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이 공학은 61.6%, 단성학교가 43.9%로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더 오랫동안 공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부에 대한 열의를 5점 척도(점수가 높을수록 열의가 있음)로 답하게 한 결과 공학 학생은 3.10점, 단성은 2.90점으로 공학 학생이 공부에 더 열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부에 대한 열의는 공학 남학생(3.12점)-공학 여학생(3.08점)-남학교 학생(2.98점)-여학교 학생(2.82점) 순이었다. 희망하는 최종 졸업 학교를 묻는 질문에 ‘대학원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은 공학 35.7%, 단성학교 21.5%로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공부 욕심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성적은 공부에 투자한 시간과 의욕에 비례했다. 조사 대상인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치른 올 9월 학력평가시험의 국어 수학 영어 과학 4개 과목의 시험 점수를 물었다. 4개 과목을 더한 총점(400점 만점)이 공학 학생은 평균 330점, 단성학교 학생은 307.9점으로 22.1점 차이가 났다. 성별로는 공학 남학생이 330.3점으로 성적이 가장 좋았고 이어 공학 여학생(329.7점)-남학교 학생(312.7점)-여학교 학생(290.9점) 순이었다. 과목별로는 과학을 제외한 3개 과목에서 공학 학생들의 점수가 높았다.

학생들이 써낸 점수로 학업 성취도를 평가한 이유는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해당 학교 모두 시험 결과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교총 교육정책연구소 김미영 선임연구원은 “학생들이 직접 써 낸 점수를 바탕으로 한 통계여서 신뢰도가 떨어지고 조사방법상의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공부시간과 성적이 비례하는 점에 비춰 대체적인 경향은 맞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딸은 남녀 공학에 보내라

공학의 긍정적 효과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학생들의 4개 과목 총점을 비교해보면 공학이 여학교 학생보다 38.8점이나 높았다. 공학 남학생과 남학교 학생의 점수 차이는 17.6점이었다.

성적이 좋은 이유는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방과 후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공학의 여학생은 65%, 여학교 학생은 40.9%였다. 희망하는 최종 졸업 학교에 대해 ‘대학원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공학 여학생은 37.9%, 여학교 학생은 16.2%였다.

자신감이나 리더십 면에서도 공학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을 통해 자아 존중감을 5점 척도(점수가 높을수록 매우 그렇다는 뜻)로 평가했다. 여학교 학생이 2.82점으로 가장 높아 자신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고 이어 공학 남학생(2.76점)-남학교 학생(2.73점)-공학 여학생(2.66점) 순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학생의 의견에 잘 따라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리더십을 평가한 결과 공학 여학생이 3.48점으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남학교 학생(3.25점)-공학 남학생(3.23점)-여학교 학생(3.15점) 순서였다.

일선 학교 교사들은 여학생들이 공학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성취 동기가 강한 남학생들을 보며 자극을 받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교내외 활동에서 교사로부터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권유받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5점 척도(점수 높을수록 역할기대 큼)로 분석했다. 공학 남학생이 2.71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남학교 학생(2.63점)-공학 여학생(2.54점)-여학교 학생(2.40점) 순이었다. 공학이든 아니든 교사들이 여학생들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할 기회를 상대적으로 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학교의 주요 교육목표 중 하나가 여성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학생들에게 리더십을 기를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공학은 남학생에게 불리하다?

이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성교육에 관한 토론 수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7,8명의 학생이 한 팀을 이뤄 성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토론한 뒤 정리해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모두 4개팀이 짜여졌는데 이 중 남자로만 구성된 1개팀을 제외하고 남녀가 섞여 있는 3개팀은 모두 여학생이 팀장을 맡았다.

여학생들은 활발하게 의견 개진을 하고 다른 팀의 동향을 살피면서 경쟁적으로 토론 분위기를 이끌었다. 남학생들은 ‘들러리’로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간혹 토론의 열띤 분위기를 방해하는 언행을 하면 팀장을 맡은 여학생이 50㎝ 길이의 자로 머리를 ‘딱’ 소리가 나게 때려 주의를 주었다.

켄트지에 토론 내용을 정리해 적을 때도 남녀의 차이가 분명했다. 남자로만 구성된 팀에서는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비뚤비뚤 적어 내려갔고 여학생들은 연필로 초안을 잡은 뒤 색색의 펜으로 정성들여 적었다. 교사가 발표를 시작하라고 하자 여학생들은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하면서 마지막까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욕심을 냈다.

이 학교 교사는 “여학생들은 집중력 있고 꼼꼼하고 자존심이 강해 과제물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 제출하기 때문에 수행평가의 비중이 높아진 요즘에는 남학생들이 내신에서 불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총과의 공동 조사 결과에서는 9월 학력평가시험을 치른 공학 남학생의 4개 과목 총점이 330.3점으로 공학 여학생(329.7점)보다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의 성적이 높게 나오는 수행평가가 빠진 채 필기 성적만을 비교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자기존중감이나 리더십 등을 평가한 결과는 남학생들이 공학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통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주고 5점 척도(점수가 높을수록 매우 그렇다는 뜻)로 답하게 한 결과 공학 여학생은 2.10점, 공학 남학생은 2.24점으로 남학생들의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에 비해 리더십을 평가한 결과는 5점 척도에 공학 여학생은 3.48점, 공학 남학생 3.23점으로 여학생이 점수가 높았다.

●자연스런 이성교제

서울 K중학교 2학년 L양(14)은 올 가을 국어 시간에 같은 반 친구 J군으로부터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너랑 사귀고 싶어.”

L양과 J군은 수업이 끝난 후 오락실, PC방,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돌며 데이트를 즐겼다. 집에서는 인터넷으로 ‘버디버디’라는 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해 밀어(密語)를 주고받았다.

만난 지 22일째가 되는 날을 기념하는 ‘투투 데이(two two day)’때는 친한 친구들에게 “나 투투야” 하면서 돈을 걷으러 다녔다. 투투를 선언한 커플에게 친구들은 220원, 2200원, 2만2000원 등 ‘2’가 두 번 들어가는 단위의 돈을 주는게 관행이다. L양은 투투 때 1만7000원을 벌었다.

그러나 L양과 J군 커플은 한 달을 못 견디고 깨졌다. L양이 밝히는 사유는 ‘성격 차이’. 감기 몸살에 시달리던 L양에게 J군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는 것이다. L양은 “누구누구는 아프니까 남자친구가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서 안부를 묻던데 너는 뭐냐”하며 절교를 선언했다.

이 또래 여학생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남자친구의 첫째 조건이 ‘성격’이다. 성격이 좋다는 것은, 볼펜을 떨어뜨렸을 때 주워주는 것, 체육시간이 끝나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체육복을 얌전히 개서 건네주는 것, 수업시간에 떠들다 걸렸을 때 “선생님, 제가 먼저 말 걸었어요” 하며 죄를 뒤집어 써주는 것 등이다. 그 다음 조건은 외모 혹은 집안. 성적은 이들 사이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교 1, 2등을 다투는 여학생이 성적이 바닥권인 남학생과 사귀어 화제가 되기도 한다.

남학생들의 이상형은 ‘예쁜 여자’다. L양 반에서 한 남학생이 “여자는 역시 외모야”라고 말했다가 여학생들에게 집단 구타 당한 일도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 남녀 공학 제도가 장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공학 학생들의 83.1%, 단성학교는 70.2%가 있다고 대답해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공학제도에 더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교도 공학에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L양은 “공학에 배정받으면 대학 가긴 글렀다며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1997년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자 일선 고교에 남녀 혼성반을 만들도록 지도했다. 그러나 성적 하락과 이에 따른 학부모들의 항의로 몸살을 앓은 고교들은 다시 남녀를 갈라놓는 추세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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