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부는 올 5월 공립 초중고교에서 남녀 분리 교육을 금지해온 성차별 금지법 ‘타이틀 Ⅸ’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972년 제정된 성차별 금지법에 따르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성에 근거한 차별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공립 학교에서 남녀 분반을 하거나 남학교 또는 여학교를 설립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남녀 분리 학급을 운영하는 공립은 16개교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남자 혹은 여자만 다니는 단성(單性·single-sex)학교를 설립하는 지방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360만달러의 연방 예산을 확보해둔 상태다.
미국 정부가 30년간의 ‘공학’ 정책을 바꾸어 단성 교육을 허용키로한 이유는 단성 학교가 공학보다 교육적으로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DC 남동쪽의 모턴 초등학교는 편부모나 저소득층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곳으로 전체 성적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조지 스미더먼 교장은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학생들의 점심 시간을 1시간에서 30분으로 줄이고 남녀 합반을 분반으로 재편성했다. 1년 후인 올해 학력평가시험에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학 과목에서 ‘최우수’와 ‘우수’ 성적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지난해 49%에서 올해는 88%로 껑충 뛰어올랐다. 읽기 과목에서도 최우수와 우수 성적을 받은 학생의 비율이 1년 만에 50%에서 91.5%로 증가했다.
시애틀의 더굿 마셜 초등학교도 모턴과 비슷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벤저민 라이트 교장은 2000년 혼성 학급을 단성 학급으로 재편성했다. 그 결과 2001년 워싱턴주의 초등학교 학력평가시험에서 하위 10∼30% 안에 들던 남학생들의 성적이 상위 27% 내로 뛰어올랐다. 여학생들의 성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또 매일 30명가량의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켜 교장실을 찾았지만 단성 학급을 운영한 이후에는 문제 학생이 하루 1, 2명으로 줄었다.
단성 교육의 전통이 깊은 영국과 호주에서는 단성 교육의 효과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의 전국교육연구재단은 영국의 2954개 고교를 대상으로 공학과 단성 학교의 교육적 효과에 관한 연구를 실시해 7월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여학생은 상위그룹과 하위그룹 모두 여학교 학생들이 공학에 다니는 여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남학생의 경우 성적이 좋은 학생들 사이에는 학교 유형에 따라 성적 차이가 없었지만 하위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공학이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지난해 고교 졸업시험(GCSE)성적을 학교별로 산출한 결과 상위 50위권에 든 학교는 1개교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성 학교였다. 공학으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보인 학교는 32위를 기록했다.
호주 정부가 지난 6년간 중고교 학생 27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성 교실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남녀 합반에서 공부한 학생들보다 과목에 따라 상대평가 성적이 15∼22%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2∼16세의 남녀간에는 인지적 사회적 성장 및 발달 속도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공학 교육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정부의
남녀 분리교육허용 방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제시하며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차원에서라도 공립 남학교와 여학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분리 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업 성적은 공학이냐 단성이냐 하는 학교 형태가 아니라 공학여부보다 학급당 학생 수, 교사의 자질, 교육 재정, 부모의 역할 등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고 반박한다.세계적으로 미국처럼 공학 교육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이고 단성 교육 전통이 강한 국가는 영국 호주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태국 등이다. 벨기에 이란 칠레 인도 등은 단성 교육 위주의 학교 정책을 펴고 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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