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녀공학 교사-학부모가 본 우리 아이들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7시 42분


왼쪽부터 이세용 김경희 강희영 황병숙씨./신석교기자
왼쪽부터 이세용 김경희 강희영 황병숙씨./신석교기자
《참석자

이세용〓43세·삼성생명공익재단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수석연구원·중2 아들

강희영〓39세·주부·중1과 초등학교 4학년 딸 둘

황병숙〓42세·서울 반포고 교사(국어 담당)

김경희〓39세·서울 신방학중 교사(사회 담당)》

왜 남녀 공학의 학생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걸까. 여학생들은 왜 여학교보다 공학에서 남자 아이들이 기가 질릴 정도로 실력 발휘를 하는 걸까. 공학의 경쟁력에 대해 국내와 외국의 연구 결과가 상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학에 다니는 아들 딸을 키우는 어머니와 아버지, 공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이 모여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았다.

-남녀공학 학생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김경희〓학교에서 남녀를 구분하면 “왜 남녀 차별하느냐” “왜 여학생만 예뻐 하느냐”며 서로 참지 못한다. 남녀간에 묘한 경쟁 심리가 발동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게 아닐까.

황병숙〓고교에서는 1학년은 남녀 합반을 하고 2, 3학년은 분반을 한다. 2, 3학년 남자 교실에 가보면 사물함이고 문짝이고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을 정도로 남학생들이 험하게 논다. 1학년 남학생들은 여학생을 의식해서인지 절제력을 가지고 있고 수업 분위기도 좋다. 집에서도 누나나 여동생과 함께 자란 남자 아이들이 인성이 좋다.

이세용〓아들이 중학생이 되더니 외모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한여름에도 집밖에 나설 땐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 다리에 난 털이 창피해서다. 이성에게 잘 보이려다보니 서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여학생들이 남녀 공학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강희영〓언젠가 딸이 발명대회에 나갔는데 여자가 왜 여기에 왔느냐는 듯한 시선을 받았다고 불평했다. 집에서는 기죽지 않고 크는데 밖에서 성차별을 느끼면서 오기가 발동하는 것 아닐까. 딸아이는 이 다음에 커서 자기가 돈 벌고 남편에게 살림을 시키겠다는 말을 한다.

이〓세상이 변했다지만 지금도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고 딸은 좋은 대학 나와 시집 잘 가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기대치가 높고 사회적인 성취 욕구도 강한 남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여학생들은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자극을 받을 것이다.

황〓서울 강남의 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는데 학부모들과 상담해보면 아들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크다. 학부모 회의를 하면 아들을 둔 학부모의 참석률이 월등히 높다. 남학생들은 부모가 일궈낸 환경과 지위에 안주해 현상 유지 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에 비해 여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김〓강북도 그렇다. 학부모 회의에는 남학생 학부모들이 훨씬 많이 온다. 아들은 많이 챙기고 과잉 보호를 한다. 이 때문인지 남학생들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강〓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여학생들의 성적이 좋은 것은 수행 평가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는 학교에서 수행평가용 과제물을 내주면 오전 1, 2시까지 붙들고 있다. 노트 검사를 한다며 수업 시간에 필기한 내용을 새 노트에 정성껏 옮겨 적기도 한다. 학기 초에 수행평가용 과제물과 배점을 알려주면 딸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미리 이야기하고 협조를 구한다. 학생의 성실성에 대한 평가는 성적에 당연히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남학생 학부모들이 수행 평가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너무 불성실히다. 수행 평가용 과제물을 내주면 “차라리 때려 주세요” 하며 내지 않는다.

-공학에 다니면서 이성 교제로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가.

강〓서로를 이성으로 생각하기보다 친구로 여긴다. 딸아이가 조별 숙제를 한다며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데 남자아이들이 딸아이 침대에 눕기도 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있기도 한다. 그 또래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딸아이가 너무 조심성이 없지 않은가 걱정도 된다.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은 교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고 남자 아이들이 화장실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나는 남자형제만 있는 집에서 자랐다. 학교도 남학교만 다니고 대학 때도 학과에 여학생이 별로 없었다. 대학생이 돼 첫 미팅을 나갔는데 여학생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했다. 그때까지 어머니 외에는 여자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이성의 눈을 의식하고 이성의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도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춘 사람을 우대하는 추세가 아닌가.

김〓아이들이 귀엽게 논다. 우리반 남학생을 좋아하는 다른 반 여학생이 내게 와 음료수를 갖다주고 애교도 부리면서 “누구누구 요즘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묻는다.

황〓남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을 지목하며 “내 이야기를 잘 해달라”고 내게 부탁하기도 한다. 작문시간에 자신이 쓴 글을 여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칭찬하며 읽어달라는 남학생도 있다.

김〓남자아이가 여자아이 목을 끌어안으며 시시덕대고 심지어는 레슬링도 하는 모습을 보면 저 아이들이 서로를 이성으로 여기는지 친구로 생각하는지 헷갈린다. 아이들은 교제 사실을 숨기기는커녕 남녀가 사귀는 것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담임으로서는 우리반 아이가 다른 반의 아이랑 사귄다고 하면 우리반 아이가 상처입지 않을까 걱정된다.

황〓아이들을 보며 세대차이를 느낀다. 반에서 꼴찌를 하는 남자애가 빼빼로 데이(11월11일) 때 전교 1등을 하는 여학생에게 빼빼로를 주며 프로포즈하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여자아이가 공부 못하는 남자아이한테 선물을 받고 자존심 상해할 줄 알았는데 둘이 사귄다. 성적이 바닥권인 남자아이가 여자 부회장하고 사귀면 여자아이 부모가 학교로 뛰어오고 나도 걱정한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공부보다는 성격이 좋은 남자아이를 좋아한다.

-남녀 공학이 학생들에게 성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을 심어주지는 않을까.

황〓딸아이가 여중 1학년이다. 초등학교 때는 남자가 학급 회장을, 여자가 부회장을 맡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여학교에서는 여자아이가 남자에게 돌아가던 역할을 맡으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강〓성차를 인정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비디오로 광고를 만드는 과제를 팀을 만들어서 하면 여자아이들은 기획을 하고 콘티를 짠다. 남자아이들은 촬영을 담당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여학교나 남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 축제를 할 때 축제의 내용을 여학교는 처음부터 여성 취향의 것으로 채우는 경향이 있다.

김〓체육 시간에 남자아이들에게 무거운 것을 들어 옮기라고 하면 “왜 여자애들은 놀리면서 우리들만 시키느냐”고 항의한다. 교사가 고정적인 성 역할을 기대해도 아이들이 거부하기 때문에 공학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강화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교 과정의 남녀 공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국은 공학 학생들이 성적이 떨어진다고 고민인데….

강〓우리 아이는 여고에 가고 싶어한다. 초중학교는 공학에 다녔으니 고교에서는 여자들끼리 생활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된다. 고교에 가면 남학생들이 공부를 더 잘 한다고 하는데 딸이 중학교 때까지는 남학생들을 앞서다가 고교에서 역전당해 좌절하면….

황〓학부모들은 공학이나 남녀 합반을 원치 않는다. 여학생 학부모는 여자아이들이 내신에서 불리할까봐, 남자아이들은 여자 잘못 사귀다 대학에 못 갈까봐 그러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요구로 2, 3학년을 분반했다.

이〓성에 대해 개방적인 서구 국가는 공학의 낮은 학업 성취도나 바람직하지 않은 이성 교제 문제로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무엇보다 대학 입시라는 강력한 통제 수단이 있어 아이들이 마음대로 풀어지지는 못한다. 요즘은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기 때문에 공학이 아니면 상대방의 성에 대해 배울 기회가 극히 제한된다.

김〓공학이 좋든 나쁘든 여학교, 또는 남학교에서 자기의 성에 맞는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모든 학교가 공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근거도 없이 공학에 가면 공부를 못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연구들이 진행돼 객관적인 데이터들이 나왔으면 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