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마크 트웨인의 낙원 모리셔스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7시 46분


모리셔스의 수도인 포트루이스 뒤쪽으로는 해발 800m 높이의 르 푸스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안고 있다./사진제공 캠프
모리셔스의 수도인 포트루이스 뒤쪽으로는 해발 800m 높이의 르 푸스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안고 있다./사진제공 캠프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작가이기 이전에 훌륭한 여행기자였다. 무명이었던 그를 유명작가의 반열에 들게해 준 것도 유럽과 기독교 성지를 순회하는 증기 유람선 ‘퀘이커 시티’호의 시승기 기사였다.

그는 생애 다섯 편의 여행기를 써서 출판했다. 그중 마지막 여행기인 ‘적도를 따라서(Following the Equator, 1897)’는 인도와 호주 남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면서 기록한 것이다. 그 책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지명, 모리셔스(The Republic of Mauritius)는 원래 모리스섬(Ile Maurice)이라는 프랑스어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다. 당시 62세의 마크 트웨인은 이 섬을 돌아보고 이렇게 표현했다.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했다. 그러고 난 후 천국을 만들었다.’

인도양의 아름다운 바다색은 여행자들에게 늘 몽환적인 기분을 자아낸다./사진제공 캠프

●모리셔스의 안내자, 마크 트웨인

미시시피의 강변도시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마크 트웨인은 방랑벽이 있었는지 어렸을 적부터 일해오던 인쇄공 일을 팽개치고 뱃길 안내원으로 삶의 방향을 바꿨다. 본명인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 대신 쓴 필명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강의 수심을 재던 단위. 배가 강을 지나는 데 필요한 두 길 깊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는 이후 지방지의 통신원으로 언론과 인연을 맺었다. 정식 기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때는 27세가 되던 해였고 그 이후 줄곧 여행을 다녔다.

마크 트웨인이 노년에 집필한 ‘적도를 따라서’는 완숙한 느낌의 문체와 표현, 침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여행기다. 하와이제도와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거쳐 모리셔스에 이르는 긴 항해의 끝은 런던이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항해를 즐겼고 모리셔스에 도착한 때는 4월 중순이었다. 다행히 그때는 15년마다 한 번씩 불어닥치는 사이클론의 영향을 받지 않아 덥고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멋진 하늘과 바다에 매료된 마크 트웨인은 모리셔스를 천국 이전의 땅이라고 극찬했던 것이다.

모리셔스는 소설가 조셉 콘라드와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도 여행한 곳이다. 유럽사회에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데 더 생 피에르가 쓴 ‘폴과 버지니아’라는 감상적인 연애소설의 무대로 알려졌다. 소설 속에서 ‘천국의 땅’으로 묘사된 섬이 어떤 느낌인지 누구든 궁금증을 품고 가고 싶어할 만큼 소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모리셔스는 지도에서 아프리카 대륙 오른편 아래에서 한뼘쯤 건너뛴 인도양 위에 떠 있는 섬이다. 아프리카 본토보다는 이 섬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영국, 프랑스,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인도계 이주민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곳이다.

로드리게스 등 부속섬들과 함께 제도를 이루고 있는 모리셔스공화국은 원래 무인도였다. 아랍세계에 알려진 것은 10세기경. 유럽인들은 1505년 포르투갈의 해상원정대가 바스코다가마의 항해길을 좇던 도중에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그러나 그 후로도 약 100여년간 유럽사람들은 이곳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1598년 네덜란드인들이 이 섬을 그들의 왕자인 모리스(Maurice Van Nassau)의 이름을 딴 모리셔스라고 칭하면서 정착했고 설탕, 담배 등을 들여왔다. 가까운 마다가스카르섬의 원주민을 노예로 붙잡아와 1712년까지 섬을 지배했다.

1715년부터 약 100년간은 프랑스가 이 섬을 지배하면서 섬 전체가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한 후 1810년부터는 영국이 이 섬의 주인이 되었다. 이때부터 다시 모리셔스라고 불리면서 인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약직 노동자로 이주를 해 왔고 중국인도 들어왔다. 노예제도가 철폐되면서 세네갈과 마다가스카르 등지에서 노예로 왔던 이들도 정착해서 살게돼 오늘날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됐다.

●모리셔스 관광의 기점, 포트루이스

가로 47㎞, 세로 58㎞의 화산섬인 모리셔스는 내륙이 대부분 사탕수수밭으로 메워져 있고 바다와 접한 지역은 전부 관광지로 개발돼 있다. 동서남북 어느 곳으로 횡단을 해도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렌터카를 이용해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수도는 포트루이스. 섬의 북서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도시가 형성된 후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도시 형성 초기의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있다. 해마다 약 60만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포트루이스에는 프랑스 식민지 때의 빌딩들과 18세기에 지어진 정부 청사, 극장 등이 있고 2개의 성당, 모스크,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바다와 맞닿게끔 설계한 르 코단 워터프런트(Le Caudan Waterfront)에는 화려한 상점들이 몰려있어 쇼핑도 하고 영화관람이나 카지노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이런 모습들은 얼핏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을 연상케한다. 힌두, 회교, 크리올(노예출신의 흑인혼혈) 등 현지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스케치하려면 코단 워터프런트에서 멀지 않은 공공버스 터미널을 둘러보면 된다. 의상과 외모, 행동까지 각양각색이다. 오래된 건물들과 중앙시장, 차이나타운, 무슬림 지역도 이곳에 몰려있어 마치 19세기의 유럽과 20세기의 모리셔스를 한꺼번에 둘러보는 느낌이다.

수도를 벗어나 가볼 만한 관광지로는 북쪽으로 11㎞ 떨어져 있는 팜플무스와 샤마렐을 꼽을 수 있다. 왕립식물원으로 유명한 팜플무스는 ‘크리올 여인에게’라는 찰스 부더레어의 시가 집필된 마을이다. 60에이커의 거대한 식물원은 처음 이곳의 관리였던 프랑스인들이 채소를 심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지금은 500여종이 넘는 아프리카와 인도양 일대의 희귀한 식물들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는 명소가 됐다. 황금대나무, 껌나무, 피를 흘리는 나무, 십자가처럼 생긴 크로스 트리를 비롯해 60년 만에 한번 꽃을 피운다는 탈리폿(Talipot)과 거대한 연꽃들을 볼 수 있다.

샤마렐에선 ‘무지개 언덕’을 찾아가볼 만하다. ‘세븐 컬러드 어스(Seven Colored Earth)’라고 이름붙은 구릉들은 샤마렐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경이로운 풍경 중 하나다. 화산활동 이후 침식과정에서 생성된 7가지 색깔의 땅은 마치 부드러운 융단처럼 융기를 만들고 있다. 이 밖에도 세계 최대의 산호초를 살펴볼 수 있는 로드리게스 섬과 아름다운 해변,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최고의 호사스러움을 자랑하는 현대식 호텔, 리조트가 오래된 관공서 건물들과 공존하는 모리셔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인종과 민족, 문화를 만나게 되는 모리셔스에서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만으로도 유쾌한 경험이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포트루이스에 있는 200년이 된 식민지시대 건물들. 이 도시에는 옛 건물과 현대식 고층빌딩이 공존한다./사진제공 모리셔스 관광청

모형범선 명품 옷…'쇼핑의 섬'

모리셔스가 자랑하는 최고의 관광상품은 쇼핑이다.

모리셔스를 여행하다 보면 ‘Official Factory Shop’이란 상호를 붙이고 유명 브랜드 옷을 파는 아웃렛상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1만원이면 명품 브랜드의 티셔츠를 살 수 있다. 면제품은 물론 보석, 가죽, 캐시미어 등도 취급한다.

옷값이 싼 이유는 최고급 캐시미어와 폴로 아르마니 베르사체 등 다국적 브랜드들의 면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지구인모리셔스에서는 500개 이상의 의류 공장에서 13만명의 노동자들이 미국과 유럽연합국가를 상대로 옷 수출을 하고 있다.

모리셔스 안에서도 퀴르피프는 ‘쇼핑의 도시’로 불릴 만큼 다양한 상점이 밀집된 곳이다. 퀴르피프 중심부에는 깊이 85m, 폭 200m의 분화구가 있어 경관마저 수려하다. 부유한 유럽계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동네이고 외국 대사관저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분화구 중턱의 전망대에서는 한눈에 모리셔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유럽적인 느낌이 나는 북부 해안마을 그랑베이 역시 쇼핑상점들과 최고급 리조트, 개인별장들이 밀집된 곳이다. 갤러리들과 부티크, 클럽메드 빌리지 같은 다국적 체인의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모리셔스의 해안 도시들에서는 관광객용인 실제 범선도 자주 볼 수 있다./사진제공 캠프

모리셔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쇼핑 아이템은 단연 모형범선이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모형 범선의 70%가 모리셔스에서 제작된 것일 만큼 모리셔스산 범선은 이름높다.

모리셔스에서 범선 제작이 시작된 것은 1968년이다. 당시 프랑스대사로 부임한 투즈는 모리셔스의 목공예품 공예가 호세 라마에게 오래된 선박모형제작을 권했다고 한다. 라마의 작업장은 그 후 꾸준히 발전해서 1970년대말에는 파리에 있는 ‘소시에테아르데질’을 통해 프랑스를 비롯해 전 유럽으로 제품이 수출될 만큼 성장했다.

배 모형은 전세계 바다를 누비고 다녔던 커티삭이나 골든 하인드, 빅토리 등 초기 군함부터 타이타닉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100여개에 이르는 작업장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북쪽마을인 굿랜드에 있는 ‘히스토릭 마린(Historic Marine)’이다. 약 150명의 장인들이 근무하는 이 작업장은 버마산 티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호가니로 기본 틀을 만들고 그 외 정교한 부속품들을 사용해서 완벽한 모형을 만들어낸다. 관광객들을 위한 제작과정 견학 프로그램도 있다. 주말은 휴무.

범선은 실제의 설계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크기가 큰 모형의 경우 한 대를 만드는 데 4개월 넘게 걸리는 것도 있다. 이름난 제작소에서는 대개 경력 20년 이상의 장인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한 사람의 장인이 반드시 한 디자인의 범선만 만들기 때문에 특정모델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존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상점으로는 퀴르피프에 있는 국가공인상점 ‘브와리엘 드 로샹’을 들러볼 만하다. 연중무휴인 이곳에서는 주로 중세의 범선을 복원한 미니어처를 판매한다. 상하 30㎝ 기준으로 100달러부터 최고 수천달러짜리까지 다양하게 판매된다.

모리셔스에서 모형 범선은 면세품이다. 국가공인상점은 정찰제이지만 기념품가게에선 흥정만 잘 하면 20∼30% 정도 값을 깎을 수 있다.

1. 가는 방법

한국에서 모리셔스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다.

에어모리셔스로 홍콩을 경유하는 일주일 일정(인천국제공항∼홍콩이 약 3시간50분, 홍콩∼모리셔스 약 10시간 10분 소요)이 가장 편리하다.

일정이 넉넉한 휴양객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체류하는 일정을 잡는것도 권할 만하다.

에어모리셔스 문의 전화 02-753-8271

2. 기후

우리와는 계절이 반대이다.

겨울에 해당하는 6∼9월 사이의 평균온도는 24도이며 1∼4월에는 최고 35도까지 올라간다. 서북쪽 지역은 동남쪽 지역보다 덥고 상대적으로 건조한 편이다. 몬순 시즌은 특별히 없지만1월에서 3월 사이에 간간이 비가 온다.

3. 기타

공식언어는 영어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는 불어와 크리올어다. 인종에 따라서 중국어나 힌두어 등도 쓴다. 비자는 15일 이내 관광목적 체류인 경우 입국할 때 이민국에서 간단하게 발급받을 수 있다.

3. 여행정보

모리셔스 관광청

(http://www.mauritius.net)

문의전화 230-208-6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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