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우연히 만난 모습은 아름답다. 관악기와 의자가 구름의 형태로 푸른 창공에서 만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스크린을 펼친다. 이런 모습은 어떨까. ‘서울-파리’라고 쓰인 버스가 중앙아시아의 초원에 외로이 서 있는 풍경이라면. 아니, 서울거리에 서 있다면 오히려 더 ‘낯설게’ 아름다울까.
최미애는 의정부 사람이다. 일찍이 키가 육척을 넘으니, 사내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였다.
모델로 일하다 사진작가 루이를 만나니 프랑스 사람이라. 정혼하여 아들 딸 하나씩을 얻었다. 서울 이태원에 스튜디오를 내었으나 집주인이 함부로 ‘집을 비우라’ 하였다.
이에 탄식하여 가로되, ‘차라리 버스를 고쳐 집으로 삼으리라. 다니며 일하기도 편하리니 어찌 주저하겠는가’ 하였다. 남편이 찬성하니 버스를 사들여 부부가 함께 수리하였다.
패션사진 작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부창부수(夫唱婦隨)하며 일하였으나 남의 사진 베끼기를 주저치 않는 잡지사들과 불화가 잦은지라, 어느날 아내가 말하기를, “이와 같이 일하느니 차라리 여행을 떠나리로다” 하였다. 남편이 화답하여 가로되, “둘의 고향이 서울과 파리인즉, 버스로 유랑하며 이방 외족의 가인(佳人)을 사진 찍으면 보람있지 아니하리요”하니 곧 의기투합하였다.
마침내 버스를 중국 다롄(大連)에 내리니 이로부터 어찌 고생이 적으리요. 차바퀴가 모래밭에 빠져 오도가도 못함이며 뇌물을 탐하는 경찰의 생트집은 일상사라. 설거지며 빨래에 아이들 수발까지 늘상 벗은 손이 마를 겨를이 없었다. 오직 초원의 풍광을 벗하고 외족들의 기이한 습속에 감탄하며 낙을 삼는지라. 중국의 외족과 평원의 이슬람 처녀들이 혹은 강권에 혹은 자청하여 저마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일이다. 버스가 흔들려 나가본즉 술취한 청년들이 차에 묶어놓은 오토바이를 훔치려 하는지라, 어찌 황당스럽지 않으리요. 괴차(怪車)에 쫓기거나 돈을 노린 건달들에 가로막히기도 부지기수라. 오로지 저 백성의 가난이 죄로다 여기었으나, 후일 이때를 회상하여 가로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삶 속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미소를 보았느니’ 하였다.
원하여 떠나온 길이었으되 고난 중의 제일은 사람과의 연(緣)으로 하여 겪는 고달픔이로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도 기쁨과 아픔을 주거늘, 동행하는 자들이 어찌 그렇지 않을 것인가. 매양 멋대로 일을 처리하는 가이드 또한 골칫거리이거니와, 지아비와 지어미가 작은 일로 마음을 상하기도 여러 차례라.
허나, 비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인 즉, 함께하는 고난은 정(情)도 깊게 하는지라, 파리에 다다른 뒤 아내가 지아비에게 가로되, ‘버스 타고 다시 서울로 감이 어떠하리요’ 하니, 이는 가이드도 내치고 일가 넷만 여행을 하자는 제안이라. 귀로에 어떠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으리요.
하여, 책방에 나온 책은 두 권 중 앞편이라, 돌아오는 절반의 여정을 대하여 일독할 날을 꼽아 기다리는 즉, 어찌 기다림이 크지 않겠는가. 곳곳에서 만난 변방 미희들의 자태도 책장을 색다른 재미로 장식하나니, 독자 제현께서는 눈여겨 보실진저.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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