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사종/´못 봐줄´ 아침드라마?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8시 32분


필자의 아내는 시중에서 인기 있다는 TV 저녁드라마는 물론 아침드라마 한 두 편쯤 거뜬하게 섭렵하는 보통주부다.

필자의 기억에 아내가 한때 즐겨 시청했던 아침 TV드라마는 모 방송사에서 수개월 전 종영된 ‘외출’이다. 40대 이혼녀인 여주인공이 지긋지긋한 남편과 이혼하고 남편 없이도 잘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등교시킨 주부 대상 프로그램인 셈이다.

두 아이를 둔 주부 주인공은 남편에게 애인이 생기자 과감히 이혼을 선택한다. 독립된 삶의 발판으로 카페의 사장이 된 그녀는 젊고 귀엽게 생긴 청년의 열렬한 구애를 받는다. 젊은 여자와 재혼한 전 남편도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생활이 곧 난관에 부닥친다. 새엄마와 아이들간의 갈등,고부(姑婦)간 문제 등 전 남편에 관한 한 되는 일이라곤 없는 것이 이 드라마의 시종일관한 전개 방식이다. 하긴 배신자 남편이 행복해진다면 주인공을 대리해 온갖 분노를 씹고 있을 주부들의 원성을 무엇으로 감당하랴.

▼주인공 일탈 보며 대리만족▼

아무튼 종영 장면에서도 여유 있는 모습으로 떠났다 돌아온 젊은 애인과 해후하는 여주인공에 비해 후처에게 쩔쩔매며 사는 전 남편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대비가 되어 남루하기 그지없다.

바로 이런 식으로 끝나는 아침드라마의 전개와 결말이 일부 남성들의 분노를 샀나보다. 그래서 이따금 지면을 통해 ‘아침드라마가 가관이다’라는 비판의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불륜, 이혼, 미혼모 아니면 드라마 못 만드나” “이런 드라마가 문제고 해악이다” “이혼율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아침드라마가 있다”는 등 개탄의 소리까지 들린다. 과연 그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용어로 사내아이의 본능 속에 잠재해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왕’에서 유래된 이 감정을 현실 속에서 구현한다면 신탁에 의해 아버지를 격살하고 어머니를 근친상간해야 했던 오이디푸스왕의 운명처럼 패륜의 강을 건너야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그 강을 건너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연극 ‘오이디푸스왕’을 본다. 누구나 무대에서 오이디푸스왕의 행동을 통해 억압된 본능의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주인공을 통해 뭔지 잘 모르지만 잠재해 있는 본능의 짜릿한 대리구현을 느껴보는 순간도 잠시다. 자신의 비극적 패륜을 뒤늦게 알고 통한에 사무쳐 절규하면서 두 눈을 스스로 뽑고 죽어가는 오이디푸스왕의 모습은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을 향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에 대한 엄숙한 질문까지 던져준다. 잘 만들어진 연극 한 편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탈욕구의 해소뿐만 아니라 한층 성숙된 관객을 만들어낸다.

사실 40대 주부도 일탈욕구의 해소처를 찾는다. 남편의 얼굴보기가 힘들어지고 아이들까지 훌쩍 커버리면 주부의 소외감은 커져 “나는 무엇인가”라는 삶의 회의가 생긴다. 일상의 권태로부터 일탈하고 싶은 욕구가 “새 인생을 살아봐?” 하는 충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충동은 본능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욕구다. 필자의 아내도 밖으로 나도는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 출구가 아마 ‘가관’이라고 지탄받는 소재들로 그려진 아침드라마가 아니었을까. “그래 맞아. 저게 언젠가 올지 모를 나의 모습이야”하며 무릎 치며 빠져들었을 아내에게 드라마 속 전 남편의 불행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오이디푸스왕을 보고 관객이 콤플렉스를 해소하듯 현실 속 남편을 향한 분노가 비현실의 드라마 속에서 폭발하고 해소된다. 거꾸로 고마운 것은 여주인공의 일탈 덕분에 아내의 일탈 욕구가 상당부분 대리 구현됐다는 사실이다.

▼´불륜´ 소재라도 만들기 나름▼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남녀 평등사회를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현상 전반의 영향이지 결코 아침드라마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불륜이나 이혼 같은 소재라 하더라도 유치하고 현실감 없는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이를 어떻게 소화해서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방송제작진의 과제다.

오히려 이러한 드라마를 통해 우리 주부들은 대리 욕구충족과 함께 세상을 폭넓게 관조하는 안목을 키우게 되지 않을까.

홍사종 숙명여대 교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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