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리뷰]뮤지컬 ´몽유도원도´, 무대의 ‘靜中動 미학’

  • 입력 2002년 11월 18일 17시 48분


무대 디자인이 눈길을 끈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도’.(왼쪽)몽유도원도는 드라마와 캐릭터에서 아쉬움을 남겼다./사진제공 에이콤
무대 디자인이 눈길을 끈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도’.(왼쪽)몽유도원도는 드라마와 캐릭터에서 아쉬움을 남겼다./사진제공 에이콤
16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올린 윤호진 연출의 ‘몽유도원도’는 ‘명성황후’팀이 다시 뭉쳐 만들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 창작 뮤지컬이다.

개로왕과 아랑, 아랑의 정혼자 도미 등 백제 시대 고귀한 신분의 남녀 세 명이 엮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버금갈 만한 매력적이고 보편성를 갖는 소재다.

주말 공연을 본 관객들의 평은 대체적으로는 호의적인 편. 윤회선씨(25·한성대생)은 “무대가 마치 ‘움직이는 벽화’를 본 듯했다”고 말했다. 독일인 헬무트 프레이저씨는 “영어 자막이 잘 돼 있어 뮤지컬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었다”며 “독특한 무대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서양 뮤지컬과 달리 춤의 비중이 적은 이 뮤지컬은 동양적인 느낌을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개로왕 침실에 켜진 붉은 색 원형 등이라든가, 무대 절반 이상을 수놓은 벚꽃은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둔 디자인으로 보인다.

‘몽유도원도’의 무대는 이 뮤지컬에서 가장 평가받을 만한 부분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정중동’을 강조한 이 뮤지컬에서 무대는 큰 비중을 차지하며 볼거리 역할을 한다. 무대에 레일을 깔아 표현한 배가 움직이는 장면은 ‘오페라의 유령’의 배의 모습 못지않게 자연스러웠고 연등이 물위를 떠내려가는 부분도 볼만했다. 하지만 암전과 함께 10여차례에 걸쳐 전환되는 무대는 극의 흐름을 너무 자주 끊고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자칫 주객이 전도돼 무대가 캐릭터나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보다 빠른 세트 전환은 남은 공연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주인공을 맡은 김성기(개로왕)와 이혜경(아랑)보다 정작 관객에게 호소력 있는 노래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배우는 향실 역의 조승룡이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랑을 놓아주며 그가 부르는 ‘아름다운 여인아’는 가장 큰 박수를 받는 곡이다.

극적인 대목에서 강약 조절은 가장 아쉬운 점이다. 도미가 눈을 찔러 멀게 만드는 장면이나 아랑이 갈대로 자신의 얼굴을 그어 자해하는 부분은 극적인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대목이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되지 못했고 음악적 뒷받침도 약했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밋밋하고 캐릭터들이 묻혀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요인이다.

창작 뮤지컬에서 늘 지적되는 음악도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가사만 바꾼 채 같은 멜로디를 1,2막에서 되풀이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친숙한 리듬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여전히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없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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