抛-던질 포 潛-잠길 잠 苗-싹 묘
‘後生可畏’(후배가 무섭다). 요즘처럼 경쟁이 熾烈(치열)하고 정보가 홍수를 이루며 하루가 다르게 變貌(변모)하는 시절에는 이보다 더 실감할 수 있는 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워낙 능력이 出衆(출중)한 후배들이 많아 무조건 선배라고 큰 소리치던 시대는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자칫 하다가는 후배에게 밀려 淘汰(도태)당하기 십상이다. 한동안 몰아닥쳤던 대기업의 名退(명퇴) 바람도 알고 보면 後生可畏의 시대가 到來(도래)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부터 2500여년 전 孔子(공자)로부터 나왔다. 그는 春秋時代(춘추시대)라고 하는 亂世(난세)에 태어났다. 어떻게 하면 기울어져 가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하고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이상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치적인 야심은 抛棄(포기)하고 대신 고향에 돌아와 책을 쓰거나 제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고자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상을 계승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던 만큼 後生(후배·제자)에 대한 그의 인식과 집착은 남달랐다. 그들을 두려운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上向性(상향성) 동물이다. 늘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삶이란 進步(진보)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올 사람이 현재의 자기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未來(미래)가 있으며 努力(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潛在力(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다 훌륭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묘이불수자, 유의부. 수이부실자, 유의부-싹은 틔워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꽃은 피우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놈도 있다.) 論語(논어)에 보이는 말이다.
그의 이 말은 두렵지 않은 後生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를 40∼50대라고 보았다. 즉 사람이 그 나이가 되어도 이렇다 할 足跡(족적·발자취) 하나 남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40∼50대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내가 後生을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後生이 나를 두렵게 할 것인가.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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