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를 함부로 부르기가 무엇해서 토정 선생이라고 함이 마땅할 이 거인은 예언이나 점술에만 뛰어난 게 아니다. 학식, 인품, 식견 그리고는 체모(體貌)까지 두루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러자니 웃음으로도 사뭇 걸출할 수밖에 없다.
그는 세속적 욕망을 걸레통보다 못하게 여겼다. 명예고 돈이고 권력이고 해봤자, 한 여름 개꼬리에 붙은 벼룩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매인 데라곤 전혀 없던 이 위대한 자유인은 웃음으로도 그의 풍모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그는 평생을 패랭이만 썼다. 댓개비를 엮어서 만든 갓, 아니 갓 축에 들지 못할 갓 비슷한 것을 애용했다. 상제(喪制) 아니면 천민이나 머리에 얹어놓기 일쑤인 그 천한 것을, 그나마 다 헐어 터진 것을 토정 선생은 쓰고 다녔다. 발에는 짚신을 신고 몸에는 누더기 꼴의 옷을 걸치고도 되레 위풍이 당당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율곡 선생이며 남명 선생까지도 그리고 백사 이항복까지도 그를 경외(敬畏)하였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런데 그는 당대의 대학자들의 천거를 받아 원치 않던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다. 억지로 포천 현감 자리를 떠맡게 된 그가 부임한 첫날 아침에 아전이 밥상을 차려서 바쳤다.
이를테면 흰 쌀 밥에 우거지국에 간에 절인 생선 구이 그리고 나물과 젓갈이며 김치 등으로 밥상은 제법 융숭했다. 기별도 없이 나타난 그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다. 그런데 상을 받은 패랭이 현감이 툭박지게 말했다.
“내가 먹을 게 못 되는구먼!”
아전이 한참 만에 다시 상을 보아 왔다. 그야말로 진수성찬(珍羞盛饌)이었다. 그런데, “아니, 더 한층 내가 먹을 게 못 되는구먼!”
패랭이 현감은 손을 저어댔다.
그제서야 아전은 소문에 듣던 토정의 성품이 생각났다.
다시 차려 왔다. 달랑하니 보리밥에 김치가 전부인 개다리 밥상을 앞에 놓고 상전은 빙긋 웃으며 숟갈을 들고 아전은 싱긋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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