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앞둔 '소신파 보수주의 논객' 이상우 교수

  • 입력 2002년 12월 3일 17시 51분


30년 학자생활을 회고하는 이상우교수.이종승기자
30년 학자생활을 회고하는 이상우교수.이종승기자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金皓起) 교수는 얼마 전 출간한 그의 책 ‘말, 권력, 지식인’에서 아카데미즘의 격을 갖춘 한국의 대표적인 소신파 보수주의 논객으로 송복(宋復) 연세대 교수와 함께 이상우(李相禹·64)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꼽았다. 올 2월 퇴임한 송 교수에 이어 내년 2월에는 이 교수가 퇴임한다. 본래 정년은 내년 8월이지만 한림대 총장으로 선임돼 이번 학기까지만 강의를 한다. 9일 오전 10시 서강대 다산관에서 퇴임기념 강연을 하는 이 교수를 그가 회장으로 있는 서울 논현동 신아세아질서연구회 연구실에서 만났다.

-어린 시절 경험이 정치학자로서의 사상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태어난 후 북한 함흥에서 살았다. 일제강점기말에 국민학교에 들어갔다(이 교수는 38년생이다). 일본말은 배운 적도 없는데 조선말 쓴다고 벌을 받았다. 불합리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군이 들어왔다. 그 무섭던 일본군이 하루아침에 소련군에 꼼짝못했다. 그땐 정치라는 말은 몰랐지만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완장을 찬 사람들을 피해 46년 월남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3개월을 보냈다. 그때 포탄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무질서라는 것을 알았다.”

-4·19세대 학자로서는 보수적이 아닌가.

“57년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그때는 누구나 ‘우리나라는 왜 이 꼴로 사는가’ 회의했다. 나는 4·19 당시 국회의사당 앞 서울대생들의 집회에서 사회를 봤다. 4·19에 적극 참여한 사람들의 화두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4·19는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4·19세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생각이 없었다.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터키의 케말 파샤와 같은 선의의 독재,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5·16을 일으킨 청년 장교들의 생각과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4·19와 5·16은 같은 맥락이고 4·19세대가 5·16에 협조한 것은 변신이 아니다(이 교수는 70년대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5·16과 60년대 박정희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70∼80년대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나.

“경희대에서 74년 국내 처음으로 ‘북한정치론’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자료로 북한헌법을 나눠주다가 안기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내 입장은 공산주의처럼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강대로 자리를 옮겨서는 첫 시간에 ‘나는 왜 반공인가’라고 칠판에 쓰고 학생들과 논쟁을 시작했다. 80년이 분수령인 것 같다. 학생회라는 것이 조직되고 그들은 논쟁 대신 대자보를 택했다. 그때 대자보에는 내가 ‘구제불능 보수반동의 괴수’라고 표현되기도 했었다.”

-올바른 통일은 무엇인가.

“지금 힘을 얻고 있는 통일론은 민족주의적 센티멘털리즘에 입각한 것이다. 민족통일을 하면 됐지 그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89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내 입장은 통일은 미루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민족우선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흐름은 그렇지 않다. 장기적으로 제대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 입장이 요즘 불편하지 않은가.

“아차 하면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빠질 수 있는 좁은 논두렁을 30년 가까이 걸어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신문에 글 쓰고 싶지 않다. 가까운 사람도 말린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나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정작 나보다는 내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힘들어한다.”

-강준만씨가 월간 ‘인물과 사상’ 등에서 당신을 비판한 글을 읽어본 적이 있나.

“읽어보지 않았다. 전에 강씨가 ‘김대중 죽이기’란 책에서 날 비판한 부분을, 아는 사람이 줄을 그어 들고 왔다. 이상우란 이름이 많다보니 나와 또 다른 이상우를 착각하고 잘못 인용한 부분도 있었다. 그 후론 읽지 않았다.”

-존경하는 선후배는….

“얼마 전 퇴임한 서울대 외교학과의 김용구 교수를 존경한다. 정치에 눈 돌리지 않고 학문의 길만 걸어오셨다. 후배로는 고려대 행정학과의 이종범 교수를 좋아한다. 그 역시 일절 잡문을 쓰지 않으면서 학문의 길로만 매진하고 있는 점이 좋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이상우교수는…▼

경북 상주시에서 태어났으나 북한 함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고 졸업 후 57년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다. 대학 4학년 때인 60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후 이듬해 공군장교 입대와 동시에 조선일보 편집부로 자리를 옮겨 67년까지 근무했다. 이해 미 국무부 장학금으로 하와이대로 유학, 정치학을 공부했다. 73년 귀국 후 경희대에서, 76년부터는 서강대에서 강의했다. 올 10월 한림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정치입문’(2000) ‘국제관계이론’(1999) ‘새 국제질서와 통일환경’(1995) 등이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