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공존 '꽃동네'의 김장 담는 날

  • 입력 2002년 12월 6일 15시 26분


꽃동네 수도자들은 아침 저녁 쉴 틈도 없다. 미사를 보는 꽃동네 수녀들./ 사진제공 꽃동네
꽃동네 수도자들은 아침 저녁 쉴 틈도 없다. 미사를 보는 꽃동네 수녀들./ 사진제공 꽃동네
서울 동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꽃동네행’ 버스를 탔다. 충북 음성군 꽃동네가 아예 정류장 이름으로까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시간반 뒤 꽃동네에 내렸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축복입니다’라는 큰 플래카드가 보였다.

찾아간 날은 마침 꽃동네 김장 주간 마지막날이었다. 부랑인을 비롯한 중증장애인, 버려진 아이들 2000여명에 이들을 돌보는 신부와 수녀가 300여명. 김장 때 쓰이는 배추만도 7만포기다. 김장이 한창인 ‘애덕의 집’으로 향하는 데 무거운 공구들이 가득 든 가방을 지고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간다.

일흔 살 전복만 할아버지. 충남 논산이 고향인데 알코올 중독으로 길에 버려져 꽃동네에 왔다가 병을 고친 뒤 아예 눌러 앉았다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집집마다 칼을 갈아주는 일. 옆에 있던 수녀가 “한시도 쉬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남을 도와주는 저분이야말로 성자”라고 귀띔했다.

1976년 9월 충북 음성군 무극성당에 주임으로 온 오웅진(세례명 요한) 신부가 동냥할 기력도 없던 걸인들을 데리고 살던 최기동 할아버지를 만나 단돈 1300원으로 시멘트를 사서 성당 뒤편에 집을 지으면서 시작된 꽃동네. 걸인 18명을 수용하던 곳이 지금은 음성 외에도 경기 가평군, 서울, 충북 청주시 옥천군, 인천 강화군, 미국 뉴저지 캘리포니아, 필리핀 등에서 중증 장애와 심신의 고통을 짊어진 4000여명이 수도자들과 함께 사는 복지단체로 성장했다.

꽃동네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생을 시작하는 젖먹이와 죽음을 눈앞에 노인들이 함께 산다.사진제공 꽃동네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사람들이 봉사를 통해 사랑을 체험하고 간다. 꽃동네의 겨울은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따뜻한 에너지로 섞이고 버무려져 깊게 흐르고 있다.사진제공 꽃동네

음성 꽃동네에는 부랑인을 수용한 애덕, 사랑, 요한, 평화, 소망의 집을 비롯해 정신요양원 ‘환희의 집’, 장애인 수용소 ‘희망의 집’, 미혼모 아이들이 있는 ‘천사의 집’ 등 모두 9개동이 있다.

천사의 집에는 신생아 30명이 곤히 자고 있었다. 12시간 맞교대를 하면서 3년 내리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40대 아줌마는 고생되지 않느냐고 묻자 “아이가 입양될 때 정 떼느라 맘 고생이 제일 심하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윤이실양(서울 청담중 3)은 “2박3일 학교연수로 매년 오는데 꽃동네에 갔다 오면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노인요양원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모여 있다. 치매노인은 물론 감각기능이 마비돼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는 노인들이 스물다섯명. 예기치 못한 방문객에 당황한 한 수녀는 아이처럼 칭얼대면서 이불을 걷어낸 할머니의 아랫도리 맨살이 드러나자 자기 얼굴이 빨개져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침대 머리맡에는 이런 메모가 있었다.

‘김점진 할머니. 1926년생. 결핵을 앓고 계십니다. ‘따가워’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예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요양원 옆 인곡 자애 병원은 나이에 관계없이 중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환자들이 막 목욕을 끝내 바닥 여기저기에 물이 흥건했다. 여섯살 덕희(남)는 목에 뚫린 구멍에 가느다란 호스로 가래를 뱉어내고 있었다. 두시간 간격으로 간질발작증세까지 있다고 했다. 새파랗게 질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아이 얼굴을 차마 두눈 뜨고 보기 어려워 도망치듯 나왔다. 병원 옆 성당은 기도의 공간이자 장례 공간이다. 휠체어에 탄 소년이 성경책을 무릎에 놓고 기도하는 한쪽 구석에는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관이 보였다. 성당문 밖에는 새 관이 5개나 쌓여 있었다. 거의 매일 장례를 치르기 때문에 준비해두는 것이란다.

매일 염(殮)하고 매장하는 일만 4년 했다는 한 수녀는 “생에서 고통받았던 이들이 마지막 순간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로 눈을 감는 것을 보면서 신(神)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꽃동네 수도자들의 노동강도는 대단하다. 아침저녁 쉴 틈도 없고 휴가도 없다. 평생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밑바닥에서 가장 상처받았던 이들이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내가 변하는 거지요.”

수녀는 열 아홉에 뇌막염에 걸려 전신마비로 20년을 투병하다 최근 숨을 거둔 배명희씨가 남긴 시를 들려주면서 “이런 시를 남기는 맑은 영혼들과 함께 사는데 어찌 고생이라 할 수 있는가”고 했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나는 행복합니다/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 쓰여질 것입니다.’

꽃동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생을 시작하는 젖먹이와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들이 함께 산다. 스님 목사 신부 수녀 등 종교를 초월하고 미국 일본 유럽에서 국적을 초월한 사람들이 찾아와 봉사를 통해 사랑을 체험하고 간다. 꽃동네의 겨울은 그렇게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따뜻한 에너지로 섞이고 버무려져 깊게 흐르고 있었다.

음성=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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